그 곳에서 보낸 나의 6주
"5분 전에 입사원서 넣으셨죠?"
입사지원하기를 누르자마자 바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난 잘모르겠지만, 그때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여느때 처럼 장난으로 벨을 누르고 도망가려는 그 때, 마치 벨 누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노려보고 있던 주인 아저씨, 그 때가 나는 너무 무서워 기절할 것 같았다. 그 초등학생 시절이 갑자기 왜 떠올랐을까?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놀란 나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황하건지, 놀란 건지, 내 자신이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동기들보다 조금 일찍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반나절 만에 끝난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나는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다. 모든 게 전 회사보다 2배~3배 속도가 빨랐다. 팀장은 어제 처음 만난 나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대했고,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첫날이라 일찍 들어가라고 기대한 건 내가 너무 순수해서였을까. 강남의 빌딩 한 가운데, 야경을 바라보며 일하는 것도 아름답겠거니 품었던 나의 얄팍한 감상에 누군가 귓싸대기를 때린 것 같았다.
회사는 경쟁사와 매일 매일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기준에 따라 업계 1위와 2위가 매일 달라지는 시장, 매일 실적에 따라 회사 전체가 박수를 치며 환호한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고 무거운 날도 있었다. 같은 것은 좋은 날은 어떻게 더 좋게 이어갈 것인지, 아닌 날은 어떤 대책을 세울건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강남 야경이 새롭지 않았다. 그저 똑같은 하루일 뿐. 그저 엄연한 현실일 뿐.
"강남에서 오후에 친구만난다고 생각하시고, 약속잡고 오시면 되요."
주 5일제였지만, 토요일 격주 근무를 했다. 토요일 근무는 모두 연장수당으로 나온다며, 옆자리 김대리는 쾌활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알았다. 토요일 약속을 잡아도, 약속 시간에 맞춰 갈 수 없는 일들이 꽤나 생기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여자친구를 식당에 혼자두고, 잠깐보고 다시 올라왔다는 앞자리 이대리가 그 이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오전 8시 출근에 6시 퇴근, 뭔가 맞지 익숙하지 않은 출퇴근 시간, 원래 출근시간은 9시, 퇴근은 6시이지만, 1시간이 기본 연장수당으로 월급에 지급된다는 것은, 점심시간에 굳이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다. 1시간 일찍 출근하면 차도 안막히고 좋다는 팀장의 추임새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안가, 저녁 7시가 되면, 회사지정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느 직장인의 일상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7시에 밥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7시 30분~40분, 하지만, 식사 후, 다들 아메리카노 한잔은 마시기 때문에, 커피를 들고 사무실에 올라오면 저녁 8시이다. 몇몇 빈자리가 보이지만, 대부분이 남아있는 환한 사무실이 보인다. 내내 자리를 비웠던 팀장들과 상무, 전부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간이다. 그제서야, 상무에게 보고를 한다며, 자료를 들어고 들어가는 팀장들이 보인다. 여기저기서 팀회의가 이루어지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팀장은 내게 이 때부터 업무 집중이 제일 잘된다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들리지 않았다.
입사둘째 날, 팀장으로부터 쿠폰 한장을 받았다. 콜택시 번호가 적혀있는 쿠폰, 난 그 회사로 전화를 했고, 회사 1층 앞에 오피러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밤 11시가 되면 고급콜택시를 부를 수 있는 그 쿠폰이 내가 가자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다. 내 돈을 내고 타본 적 없는 고급 택시를 불렀다. 오피러스, 체어맨을 타고 기숙사까지 퇴근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게 뭔지 알아요? 택시타고 가는 그 시간이에요. 잠깐 동안 내가 임원이 됐다고, 성공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순간, 나 성공했다고 내 자신한테 되뇌이는 거죠." 뚜벅이 이대리는 여자친구와 헤어진게 힘들다면서도 그렇게 꼭 쿠폰으로 콜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갔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게 평범한 줄 알았다. 잠시동안. 입사 첫날 반나절 이후, 3주 뒤 어렵게 만든 입사 동기들의 점심시간. 우리들의 공통점이라해봐야 같은 날 입사한 것과와 반나절 오리엔테이션을 같이 받았다는 것밖에 없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는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만든 카톡방. 밥 한번 먹자는 게 일이 커졌다.
입사동기 3명 중 1명, 선녀킴은 이 회사를 찬양했다. 충무김밥에서 회사 찬양이라니.
"다 돈으로 주잖아요. 첫 월급 받고 놀랐어. 돈도 많이 들어왔잖아요. 사실 쓸일도 없고.."
경제학과 석사출신인 선녀킴은 본디 자신의 석사논문 주제를 선물거래에 접목시켰다. 처음에는 등록금 만큼을 벌었고 또 등록금 만큼을 날렸다고 했다. 모아둔 조금의 돈을 가지고, 3개월 동안칩거끝에 8천만원을 벌은 인물이었다. 원래 1억이었지만, 또 날렸다고 했다. 선녀킴, '선물거래의 여왕 김모씨'인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는데, 선물거래가 뭔지도 모르는 부모님은 자신을 히키코모리 취급을 했고, 결국 그녀의 아버지는 정상적인 생활을 안할꺼면, 그동안 덴 석사 등록금 갚고, 집을 나가라는 소리에, 이제 좀 정상적인 생활 좀 해볼까 하고 회사에 입사했다는 그녀다.
"사람들하고 이제 이야기도 하고, 밖에도 다니니까 부모님이 만족하세요. 요즘 선물장도 안좋고 하니까"
"이 회사 미쳤어요. 던전이에요. 던전" 이내 입에서 불을 뿜는 이 남자는 오방정씨. 자칭 '5년간 다니던 방송사를 그만 둔 정씨성의 디자이너'. 디자이너 답지 않게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는 그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라 때로는 방정스럽기도 하다며, 붙인 별명. 오방정은 5년간 버티던 방송국 디자이너 생활이, 모 전대통령 때문에 바뀐 케이스였다. 모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응급실행, 당시는 공교롭게 와이프가 아들의 열때문에 응급실에 간 날, 퇴근하려던 오방정은 새벽까지 급하게 대통령 사망과 대통령 기사회생 버젼의 두가지 특별 페이지를 만들다가, 자신이 사망할 갈 것 환멸을 느끼고는 돌연 사표를 내고 나온 그였다.
"방송사도 심하면 심했지, 왠만하면 어디하고도 비교도 안되요. 월드컵때 생각하면 진짜, 근데 여기는 진짜 심해. 다들 미친거 같어. 미친 좀비들이야, 여긴 죽지도 않는 좀비들 던전이라고." 새 시즌준비 때문에 3일간 집에 못가고 찜찔방에서 지냈다는 그는, 강남이라 찜찔방도 비싸다며 샤우팅을 했다. 이디야에서 샤우팅이라니.
회사 내에는 포인트 제도가 있었다. 팀장은 수시로 팀원과 업무목표를 부여할 때, 포인트를 설정여부를 정할 수 있었고, 성과가 달성하면 포인트가 부여되었다. 팀장이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는 팀원들은 성과에 팀장의 재량으로 추가 보너스를 줄 수 있었고, 일에 미친 사람들처럼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동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팀장은 그랬다. "여긴 핏(fit)이 맞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좋은 회사야. 월급 나오지, 밥주지, 집 보내주지, 돈을 쓸 시간을 주지 않는 회사잖아"
이런 문화는 사실 벤쳐로 나와서, 어려운 시절부터 힘들게 버텨왔던 창업자와 창업 멤버들이 만든 문화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2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걸 버티는 사람과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 사내 경쟁, 팀내경쟁이 유달리 심했다. 같은 본부 내에서 서로 옆팀과 경쟁을 했고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매주 새로온 사람들이 인사를 했고, 매주 그 만큼의 사람들이 사라졌다. 깨진 항아리를 펌프로 물을 들이부어 항아리를 채우는 것과 같았다.
6주 만에 나는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때로는 마음에 든 것 같고 또 때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그 회사. 나는 오방정이 이야기 하던 그 던전에 중간종 정도의 존재긴 했을까? 아직 변이가 많이 진행되지 않는 중간변이정도.
"회사에서 그렇게 일하다가는 일찍 죽어요." 그 날 새벽 콜택시를 기다리면서 내게 그는 이야기 했다. 그 때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던 컨설턴트. 나는 그에게 내 손을 보여주었다. "근데요, 나 생명선은 진짜 자신있거든요. 무지 선명하고 길어서.." 그 컨설턴트는 한달 뒤, 응급실에 실려갔고 심장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상황을 바라보기 마련이라고. 상황을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던전이든 천국이든,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이다. 맞다. 나는 던전을 떠났지만, 오방정과 선녀는 남았다. 오방정은 아직도 화를 내고, 찜질방에 다니지만, 자신의 작업물들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말한다. 자기는 잘살고 있다고 말이다. 선녀는 선물거래가 아닌, 암호화폐로 넘어가서, 연봉만큼 벌고는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항상 이야기한다. 회사 다닐 때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경력으로 넣기도, 그렇다고 빼기도 애매한 그 회사에서의 6주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