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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Jun 18. 2019

퇴사에 반응하는 5가지의 유형

퇴사를 준비하는 당신을 위해, 알려주는 퇴직 인사의 기술.

"이차장은 그만둘지 알았어. 내가 좀 촉이 좋거든"

평소에 과묵하던 옆팀 정팀장이 이야기했다. 퇴사 일주일 전 짧게 인사하러 간 자리였다. 뭐라고 반응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그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건승하세요" 정팀장님과 나와의 거리만큼의 인사였다. "건승하세요." 작별인사 시간을 마치는 좋은 문장이다. 정팀장과 나와는 베트남 출장을 3주간 같이 다녀온 사이지만, 베트남의 습한 기온 탓인지, 가까운 유대감을 가지지 못한 사이였다. 한 달 전, 팀장님에게 퇴사를 알리고 난 조용히 이 사무실에서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구태여 송별회식, 송별인사라는 이벤트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회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거다. 퇴사를 알린 뒤, 2주간은 나와 회사 간의 적당한 그 거리가 유지되었다. 서류 분쇄기에서 생각했다. 5년간의 기억들도 하나둘씩 저소음 모터 속으로 밀어 넣어 조각조각 낼 수 있다면.

회사생활은 심지어 퇴사 조차도 쉽지 않았다. (출처-픽사베이)

퇴사 3주 차가 지나가자, 나의 미팅과 업무들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미팅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진행이 되고, 외부 제안 PT는 진행이 됐다. 팀 전체 메일로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현재 투명인간 모드라는 걸.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내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그때가 주변에 작별인사를 할 시기라는 걸. 난 본능적으로 알았다. 엑셀로 평소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리스트로 만들었다. 만나서 인사를 할 사람들과 메일로 알릴 사람들을 구분했다. 만나서 작별인사를 하는 방법은 상황을 잘 봐야 한다. 내가 아닌 인사를 받는 그 상대방의 상황, 그건 정수기에 물을 마시러 가거나, 휴지통을 버리면서 대상인의 상황을 파악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있거나, 바쁜 시간은 피한다. 메일 인사는 미리 문구를 써두었다. 우연히 링크드인에서 봤던 지인의 퇴직인사를 캡처해두었다. 내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수정을 했다. 인사를 다니면서, 중간중간에 메일리스트를 추가 또는 삭제했다. 누락된 사람이 없게 재차 확인한 뒤, 퇴사일 또는 퇴사일 전날에 발송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해야 할 퇴직인사라면 제대로 하고 가자 (출처-픽사베이)

내가 경험한 그들의 퇴직인사의 반응 유형은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수사반장형

내가 퇴사한 뒤, 무엇을 할 것인지, 남은 연차는 며칠이며, 휴가는 어디를 갈 것인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다. 나의 퇴사에 내 주변의 반응이 어떤지까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한 번 두 번 경험을 하자, 모범답안이 나왔다. 되돌아보니 회사 내에서 호사가에 해당하는 분들이셨는데,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10명, 20명에게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건 그 때문이었다.  


2. 라디오 DJ형

나와 함께했던 업무의 기억 또는 회식의 기억들을 스토리로 들여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잊었던 기억이었는데,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 때론 그 기억이 맞았고, 때론 그 기억은 틀렸다. 하지만, 잠시 감상에 빠질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항상 과거는 예쁘게 포장되는 법이니까. 자칫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시간 안배를 하는 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에 "미팅이 있다" 거나 "약속이 있다"라고 정중하게 얘기하고, 시간 안배를 했다.


3. 점술가형 / 애널리스트형

앞서 말한 정팀장님과 같은 분들이었다. 나의 퇴사 징후를 미리 예견하셨다는 분들, 그래서, 나의 퇴사로 그들의 촉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이었는데, 내가 떠남으로써, 내가 속한 본부와 팀에는 앞으로 이런 일들이 예상된다는 스토리도 있었다. 때론 예리한 사내정치 역학적 분석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내 업무의 대체 인력은 누가 적합한지에 대한 의견까지는 투머치 했으나, 재밌는 예측에는 동조하고, 황당한 전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4. 주식트레이더형

주로 임원분들 이거나 회사 내 주요 포스트에 있는 팀장에 해당하는 유형이다. 인사를 하기도, 받기도 쉽지 않은 분들이다 보니, 인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간에 전화가 오는 경우도 많이 있어, 난 주로 앉아서 미소를 머금고 기다렸다."수고하셨다"며 간단한 악수가 대부분, 그리고, 다시 노트북에 파묻히거나, 회의를 들어가시는 분들이었다. 바쁘신 분들이지만, 그만큼 회사 내 중요한 분들이니 꼭 빼놓지 말고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참고하시길 바란다.

  

5. 예능 MC형

리액션이 크고, 본인 외의 주변 분들에게까지 인사를 시키는 분들. 처음에는 당황할 수도 있지만, 그분들이 리드하는 데로 잘 따라 하면 순조롭게 끝날 수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어느새 인사는 끝나 있었다. 홀린 기분이 무언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힘이 들지는 않았다.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감상적인 이야기를 양념처럼 해주시는 분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몇 사람들이 있었다. 인사할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상처였던  사람들. 흉터는 아니지만, 몇몇 순간에는 아프게 나를 찔렀댔던 사람들이거나. 내가 마주치면 조금 부끄럽거나, 미안했던 사람들. 나도 그들도 상황이 나빴던 거지, 사람이 나빴던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고, 어렵지만 찾아가서 작별인사를 했다. 모든 게 나를 위해서 했다고 생각했다. 그 고민하는 시간조차 나에게는 아까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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