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인드박 Aug 19. 2019

20년 만에 바다로 간 돌고래

그 돌고래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그날 새벽 나는 파출소에 있었고 매형의 차를 타고 집으로 실려갔다. 용케 들고 있었던 핸드폰, 최근 통화 1순위의 여자친구가 제일 먼저 파출소에 도착했다.


파출소에 누어있는 나란 남자를 보고, 집으로 전화를 했고, 어머니는 나를 실으러 매형에게 연락을 했다. 그 날 예기치 않게 온 식구가 파출소로 모였다. 여자친구와 졸업식 이후, 가족들의 두번째 인사자리, 매형이 그 인사에 추가되었다.


파출소에서 나는 이 사건과 무심하게, 곤히 벤치에 누워있었는데,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니면 그저 눈을 감고픈 순간이었는지 나는 아직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을 되돌려보면, 모든 건 회식때문이었다. 나는 술을 돌려마시고, 기억을 잃었다. 한잔씩 돌려마셨는데. 당시 회식인원은 15명이었나 그렇게 마시고 나는 의식을 잃고 택시를 태워졌다. 택시안에서 생전 안하던 차멀미를 하며, 토했다. 택시기사가 욕을 했고, 나를 파출소에 맡기고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오늘도 정갈하게 양복을 입고, 나는 지하철 문옆에 기대어 생각했다. '오늘은 어떻하지..' 매일 경기도에서 강남까지 1시간 30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회사는 점포의 인력을 줄이고 있었다. 점포당 1~2명의 인력을 더 줄여야 했다. 점포 자동화란 명목으로, 근속연수가 오래된 인력들이 권고사직의 대상이었다. 매일 아침 점포에 연락을 해서 점장에게 명단을 제출하라고, 면담을 빨리 해달라고 독촉을 해야했다. 회사에 들어서서 회사건물에 걸려진 '일자리 창출 기업' 플랫카드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회사는 알바생들을 줄였고, 신입을 안뽑았으며, 비용을 줄였다. 하지만, 시스템은 무서웠다. 이렇게나 굴러가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10명이 하던일을 6명이 해도 점포는 굴러갔다. 아니 굴러가게 만들었다. 1~2명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팀장도 숫자가 중요했다. 맞추는 숫자, 보기좋은 숫자를 만드는게 중요했다.


신기하게도, 숫자가 맞춰질 수록 나도, 그리고 나의 위의 팀장도, 그의 위의 상무도 칭찬을 받았다. 우리는 뿌듯해 했다. 불과 몇달전만해도 매주 한번씩은 보는 사람들이었다. 본사에서 왔다고 따뜻한 커피한잔, 샘플을 챙겨주던 사람들을, 그렇게 명단 위에 올려놓고, 더하고 빼고를 하고 있었다. "근속연수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좋아. 이번에 후배들 앞길 막는 나이든 사람들부터 정리하자고" 팀장은 명단을 정리하는 내게 이야기했다.


해진 저녁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창밖의 불빛 속에 나와같이 이 밤을 밝히고 있는 사무실의 반딧불들이, 나도 언제가 누군가의 앞길을 막고 있을 때가 올까? 팀장이 퇴근하며 이야기한 용차장과 공차장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웠다. 다리가 불편한 용차장은 4급 장애인으로 회사의 장애인고용혜택을 준다고, 공차장은 큰아버지가 계열사 납품사 사장이라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날 결재판에는 나는 팀장이 이야기한 건강하고 깨끗한 나이든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사람들의 명단을 올렸다. 상무의 싸인을 받으러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팀장에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이 사람들?"

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조건이 그나마 좋은거야. 그냥 짜를 수도 있는데."

팀장이 항상 내게 말해왔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상무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도 점포 점장에게 똑같이 했던 이야기."이번에는 조건이 그나마 좋은거에요. 점장님, 다음에는 아예 없을수도 있으니까, 잘좀 설득해주세요. 근속연수의 이분의 일에 기본급 수준은 회사에서도 많이 배려한 겁니다."


나는 그들과 한번도 만나지도, 통화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팀장이 말하는 배려를 누군가 하긴 한 걸까? 그들의 이름은 맨 뒷장 참고자료로 들어가 있었을 뿐이지만, 누구도 자세하게 보려하지 않았다. 그저 훑어볼 뿐, 그 명단에 하나하나의 사람들은 근속연수가 10년~15년이 넘는 사람들이었는데도 말이다,


회사는 어렵다 어렵다. 우리 모두는 지쳐갔지만, 누구도 누구의 책임인지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무리한 해외사업진출이 부메랑처럼 회사에 재무구조에 타격이 된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상무도 전무도 대표이사도 모두 이럴수록 허리띠를 졸라메자고만 할뿐이었다.


팀장은 점장들과 조용히 회식을 한다며 나를 불렀다. 회사 앞 고급 고깃집, 룸안에 점장들이 모여있었다. 팀장은 조직활성화 차원에서 모인 자리라며, 오늘 이 자리는 상무가 법인카드로 쏜다고 했다. 나는 맨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팀장의 뾰족한 눈치를 받았다. 그제서야 잔을 들고 일어섰다. 전화로 일만 드려서 죄송하다고 술잔을 들고 다녔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화이팅을 왜쳤고, 잘해보자 했던 것 같고, 건배사를 이어졌다. 그 날의 술이 달고도 썼던 것만 기억이 났다.


쓰린 속은 그 다음날도 이어졌다. 밤 늦은 시간 오래된 TV의 채널을 돌리다가 동물농장이 나와 잠시 채널을 멈췄다. 20년 만에 바다로 돌아가는 돌고래 금등이와 대포의 이야기였다. 금등이와 대포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0년 동안 제주해양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했고, 이제 고향인 제주 바닷가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부리가 닳아지고등과 꼬리에 상처가 20년 시간처럼 흔적처럼 남겨진 그 둘. 그물이 풀려진 뒤, 금동이는 바다로 가지 않고 다시 사육사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무엇을 깨달았는지 바다로 다시 돌아갔다.


(출처-픽사베이)

"안녕 돌고래들아, 고마웠어"

마지막 자막이 뜨고나자,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된 나는 급히 휴지를 찾았다. 방문을 닫고 한동안 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탈을 쓴 사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