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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Oct 25. 2019

출장의 추억 파트1

위기때 웃을 수 있는 니가 챔피언!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의 '추방과 멀미'편 16페이지에서 이렇게 적었다."난생처음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제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는 당시 겨울방학동안 책집필을 위해 상하이 푸동지구에 한달간 머물기로 하는데, 중국 푸동공항에 내리자마자 중국비자가 없어서 공안에 의해 한국으로 추방당한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었다.

출장, 언제나 힘들다. (출처-https://giphy.com)

나는 종종 국내와 해외출장을 다녔다. 국내 출장은 부산, 대구를 자주 갔고, 해외출장은 미국, 러시아, 태국 등을 다녔다. 국내든 해외든 공통점은 하나였다. 출장마다 시작과 끝이 순조로운 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아찔한 순간, 부끄러운 기억들, 그런 일들이 항상 생겼다.


1년 전 부산출장에서 생긴일이었다. 회사는 유통의 격전지 부산에서 시장점유율이 매년 떨어지고 있었고, 대표의신경 좀 쓰라는 한마디에 부랴부랴 부산으로 워크샵을 하러 매니져들과 가는 부산출장이었다. 일행 중 막내였던 나는 일정, 식당, 숙소를 체크하느라 어김없이 분주했는데, 정작 내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던 건 비행기 출발 1시간 반전이었다.

 

비행기 출발 1시간 반 전 . (출처-https://giphy.com)


근데 사람은 신기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맞닥뜨리니, 침착해졌다. 1997년 경재위기, IMF때 어땠냐는 후배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조용했어 마음이.

그때처럼 내가 그랬다. 조용했다, 마음이, 시간이 멈춘것같이 모든게 느려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지갑을 두고온게 확실했으니 해결책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공항안내소에 내려갔다. 도끼를 빠뜨린 나뭇꾼의 심정으로, 안내데스크에 이모님뻘 되는 아주머니께 말했다.

저기 신분증을 두고 오면 어떻게 되나요?

처분을 달게 받게다는 질문이었는데 의외로 이모님 별일도 아니라는 투였다.

출발이 얼마나 남았어.

한시간반이요.

가까운 동사무소로 가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아. 그게 제일 빨라!

그걸로 끝. 참으로 명쾌하고 간단한 대답이었다. 영화 신의 한수에서 주님역의 안성기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 세상이 고수에겐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 아닌가.위기에는 구구절절함이 필요없다.

노련함에서 나오는 바이브 (출처-https://giphy.com)

주민등록증 재발급. 내가 받는다. 그러고만다. 나는 네이버 지도를 열고. 공항동 주민센터를 쳤다. 거리상으로 10분. 해볼만 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차만 안밀린다면 비행기를 탈수 있다. 막내라 공항에 일찍 나온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팀장 포섭. 팀장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불렀다.

팀장님, 저 속이 너무 안좋아서 병원좀 다녀올께요.

병원?

김포공항 4층에 병원있어요. 탑승전까지만 좀 챙겨주세요언제나 그랬듯 팀장은 왜 내가? 무언의 메세지다. 그래도 아프다는데,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

빨리 갔다와.

공항에도 병원이 있다는 이야기만 얼팟 들었는데, 여기서 입밖으로 나올 줄이야. 대단하다!

팀장은 늘 귀찮아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신분증을 두고 왔다고 어찌 얘기한단 말인가.

나한테 피해만 안오면 된다 (출처-https://giphy.com)

팀장은 잊고 이제 나는 다시 바빠졌다. 핸드폰에 타어머를 50분으로 맞췄다. 뛰기 시작했다. 3층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순조로운 출발. 공항동 주민신터요을 외쳤다. 나이 드신 기사분은 내게 내비에 불어달라고 해서 다시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공.항.동.주.민.센.타

작동했다. 정확히 가서 10분 걸렸다. 뛰었다. 오랫만에, 단거리 질주였다. 주민등록센터에 도착하니, 주민등록 재발급 5,000원과 사진 1장. 이렇게 쓰여있었다. 사진!.


때론 뛰어야 한다.  (출처-https://giphy.com)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사진관은 어딘가요?

또 뛰어서 내려갔다. 사진관에는 이미 1명의 고객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 가져왔는데, 신분증만 없었다는거죠? 사진사가 카메라 앞의 남자에게 물었다.

네-

뜻밖의 여유, 나와 같은 상황이었던 그 남자에게 갑자기 뜨거운 동지애가 느껴졌다. 사진사는 나를 보고는 테이블에 있는 서류를 가리켰다.

이거 쓰는 건가요.

그는 사진을 가위로 자르면서, 동시에, 급하게 휘갈겨쓴 내가 주민등록재발급 신청서를 봐주었다. 노련함에서 나오는 멀티태스킹.  

여기 이름 쓰시고요, 여기 싸인하시고요. 비행기 시간 언제시라고요?

1시요.

지금 가셔서 접수하시고요, 여기 바로 앞에서 택시 타세요.

프로페셔널 서비스를 경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댓가가 따랐다. 증명사진 값, 27,000원 프로페셔널은 언제나 비싸다.


프로페셔널은 비싸다. (출처-https://giphy.com)


사진을 들고 뛰어 올라간 주민센터, 번호표를 뽑으니 타이머는 20분을 가리켰다. 주위를 들러보는 때아닌 여유를 보였다, 여행가방을 둔 가족이 뒷편으로 보였다. 남편이 뭔가를 두고온 모양이었다. 이런, 가족이 다 주민센터로 온 것이다. 그 한명 때문에. 이런, 남걱정을 하다보니, 직원분이 나를 불렀다. 증명사진에 비닐이 씌어진 임시출입증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김포공항에서 나는 정식으로 사람이 되었다. 승객이 되었다.  


고작 10분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택시를 탔다. 땀이 비오듯 났다. 더운게 아니라, 긴장해서 였다. 속이 타들어갔다. 다행히 김포공항까지 차는 막히지 않았다. 12시 30분 플랫. 정각. 붙일 짐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뽑아든 표를 들고, 튀었다. 뛴 것이 아니라, 튀었다. 몸을 날렸다.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공항 검색대에서 미안하다고 하며, 인사를 하며 줄을 점프했다. 임시신분증을 의기양양하게 내밀었다. 검색대를 지나자,12시 45분.

다행히 멀지 않은 게이트 9번에서 승객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휴-(출처-https://giphy.com)

팀장은 왜 늦었냐며 짜증을 냈다.

병원에서 링겔 맞고 가라고 해서요.

왜 이렇게 땀을 흘려. 근데.

아직 열이 안내려서요.

김해로 가는 비행기안, 한숨을 쉬었다. 직장인이다.

그럼에도 나는 김영하 작가처럼 오늘의 하루를 이야기릉 언젠가 어디에다 남길꺼라는 예감에 메모장을 켜서 기록을 했다.

1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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