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 나방이었다.
퉁-퉁- 나방이었다.
엄지손가락만 나방이 형광등에 부딪치고 있었다. 학교 옆에 있는 수목원때문이었다. 서울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갖가지 곤충들을 볼 수 있었다. 해가지면 칠흙같은 어둠 속에 퉁-퉁-, 나방이 전등에 부딪친다.
나는 나방을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했지만, 손으로 잡기에는 너무 컸다. 기숙사 룸메이트는 낮시간에 잠시 들릴뿐, 잠은 자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도 나 혼자였다. 기숙사는 고요했다. 파정사, 어느 사찰과 비슷한 적막이 흘렀던 곳. 나의 기숙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경영대학원은 매년 취업율이 100%였다. 전원입학, 전원취업이라니 입학할 때는좋았지만, 취업시즌이 되자, 졸업예정자인 내게는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혹시 100%의 취업률이 깨지는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4학기에 동기들 중 일부는 3-4개의 중복오퍼를 받은 친구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1개 기업에 최종합격을 하거나, 2개 기업중 하나룰 재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1개 기업에서 오퍼를 받은 K가 동기중 최고였다. 어디에서 오퍼를 받았는지 본인도 헷갈릴 정도였다.
랩실에 앉아있으면, 누가 어느 곳에 합격했다더라, 연봉을 얼만큼 더 받는다더라라는 소식들이 귓가에 들렸다. 4학기, 이미 취업이 된 동기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해보였다. 대학원 특성상 회사지원으로 온 나의 룸메이트를 포함한 동기들은 설램반 걱정반으로 다시 회사복귀를 준비하고 있는때였다.
파정사, 사찰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왜 나만 안되는 것인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높았던 자존감은 최종면접에서 2-3곳이 불합격 통보를 받으니, 여지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한없이 가벼운 것이었다. 미취업리스트의 이름들이 하나둘씩 지워지고 걱정이 심해졌다.
사찰에서 악몽을 꾸기도 했다. 모두가 취업이 되었지만, 나 혼자만 안되는 꿈을 꾸었다. 패기 넘치게 회사를 그만두고 들어간 대학원, 경력전환의 목표는 사라졌고, 다시 대기업으로의 입사가 최대목표가 되었다.
S전자를 그만두고, S전자를 다시 들어간 동기가 말했다. 그 곳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구요.
미취업은 실패자, 아웃사이더, 무능력자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악몽을 꾸던 하루 하루의 기다림 끝에, 나는 결국 11월 말 한 대기업의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아주 아슬아슬하게. 결국 나도 미취업 리스트에서 벗어났다. 아웃사이더 그룹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제서야 취업한 동기들 사이에 끼여, 여유를 즐겼다. 그리고 그렇게 남들과 비슷하게 졸업자가 되었다.
뒤늦게 알았다. 그 해 경영대학원은 최초으로 100% 취업률의 기록이 깨졌다. 졸업생 중 3명이 취업하지 못했다. 막상 기록이 깨지자 큰일이 날것 같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아무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던 듯, 그렇게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녔다.
졸업한지 12년이 지났다. 그리고 동기 K가 연락이 왔다. 11곳에 입사제의를 받았다던 K였다. K는 11곳 중에 제일 보수가 좋았던, 제 1금융권에서 직장을 잡았다. 취업 성공케이스로 학교 인터뷰, 취업설명회에도 여러번 나갔던 그, 그는 이후로 3번의 직장 옮겼다고 했다.내가 가지고 있던 명함은 그의 옛날 명함이었다. 회사의 레벨은 갈수록 낮아졌지만, 그의 직급은 올라갔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직장이 될것 같다고 했다.
나를 왜 불렀을까? 갑자기,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한 그가 이상했다. K는 회사에서 과로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3개월 간의 입원을 했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받았다. 자신감이 넘쳐흘렀던 그는 이제 조금의 과로에도 건강을 걱정하는 한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나 역시 응급실에 2번이나 실려갔다고,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이 마지막 직장일 것 같다고 말이다.
그 즈음 나 역시도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감사팀에서 감사를 받고 있었고, 매일 코피가 났고, 자다가도 코피가 나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회사는 은밀하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대상일 확률이 높았다. 나를 끌어주던 상무는 이미 먼저 옷을 벗은 뒤었고, 그의 길을 찾아갔다. 누군가를 챙기고 챙겨줄 상황이 아니었다. 팀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K가 이야기 했다. 직장생활을 단거리 경주로 끝내려고 했는데, 끝나지 않았다고, 내가 원하던 원치않던 오래달리기를 해야 하는거였다고, 오래달리기, 나는 중학교 체력장이 떠올랐다. 체력장의 마지막은 오래달리기였다.운동장을 계속 도는 오래달리기, 선두와 한바퀴가 차이가 벌어지면, 체육선생님은 뒤쳐진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웠다. 선두와 구분을 하기 위해서, 모자를 쓰고 달리는 일은 곤욕이었다. 몸도 지쳤지만, 마음마저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 레이스는 끝낼 수 없었다.
나방이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전등빛을 태양으로 착각하고 오작동을 한것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숙사에서 나는 나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퉁-퉁 나와 K는 나방이었을까? 모두가 가는 대기업에 취직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을 한 나방이었을까? 마치 전등빛을 태양으로 착각한 나방처럼 그렇게 우리는 불빛을 향해 돌진했고, 이제는 오래달리기의 마지막처럼 힘을 소진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인가?
뒤돌아보니, 대학원 취업율 100%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지표였다. 그저 누군가 내보이고 싶은 숫자였을 뿐이었다. 기숙사, 다음날 아침, 나방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기력도 없이 미동도 없이 가만히 바닥에붙어있는 나방을 보았다, 나는 티슈를 집어 나방을 조심스럽게 집었다. 태양이 뜨는 아침, 기숙사 창밖에 올려두었다.
자 태양이다. 보이지. 이제는 착각하지마라.
나방은 순식간에 수목원으로 날라가 버렸다. 이제 태양을 향해 다시 날아간 나방.
K와 작별을 하고, 그는 나를 한번 돌아보았다. 나도 그를 보았다. 그에게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흔들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수목원으로 날아가는 나방처럼 사뿐하게 걸어가는 그를 보았다. 나도 그렇게 사무실로 걸어갔다. 다시 나방의 꿈을 꾸며 우리는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