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비밀은?
"명함 수집가네."
대기업 이직 후, 피할수 없는 몇가지 일들이 있다. 경력사원 교육과 대표와의 면담이다. 경력사원 교육이야 교육이니까 부담이 없지만, 대표와의 면담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운이 좋으면 차한잔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대표의 성향에 따라 점심식사로, 또는 저녁 회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10년 넘게 다니면서 운좋게 몇번을 이직한 나는 늘, 이전 잦은 이직으로 코멘트를 받았는데, 그중 기억나는 한 대표는 경력사원들 중 내 순서에서 잠깐 멈짓하더니말했다.
"명함 수집가네'
10년 넘게 대기업이라는 조직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일했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중 하나는 주위에 일잘하는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공부도 일도 주변에 가까이하며 따라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들과 밤새 프로젝트를 하며, 지근거리에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닮으려고 했고, 내 방식으로 체화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개인의 방식들이 아닌 어느정도 보편화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기업 일잘러의 공식! 이게 내가 붙인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1. 중요한 건 메모가 하는게 아니라 메모를 정리하는 것이다.
'적자생존' 적어야 산다. 이 메모의 중요성이야 입사하면서 부터 선배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다. 회사에서 매년 예산을 들어 다이어리를 주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만, 요즘 회의할때 다이어리든, 노트북이든, 태블릿이든 안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메모는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앞자리 최과장은 달랐다. 성격은 까칠했지만, 일하나는 잘한다고 소문났던, 누구도 부정하는 이가 없었던 그의 무기는 다이어리였다.
회의를 하다 우연히 보게된 그의 다이어리, 검정색 볼펜 위에 삼색으로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뭔가 다르다 싶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회의때 마다 그가 다이어리를 어떻어떻게 쓰는지를 유심히 보았다.
파랑색, 빨강색, 초록색으로 칠해진 그의 다이어리는 빼곡하지 않았다. 일단 행간을 여유있게 쓰는 것이 특징, 여유있는 간격으로 주제마다 내용을 적고, 그 이후에 삼색 형광펜을 칠한다.
그의 다이어리에서 뭔가 떠오른 책 한권, 학창시절에 읽었던 책, 사이토 다케시가 쓴 '삼색볼펜 초학습법'이었다. 이 책의 핵심은 3색으로 공부를 체계화하고, 3색으로 시각화 시켜 머릿속에 익히는 것이었다. 3색의 사용법은 중요한 것은 파랑, 더 중요한 것은 빨강, 재미있는 것은 초록색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3색 학습법을 업무에 적용시킨 최과장, 그의 주간보고는 명확하고 간결했다. 그는 다이어리의 빨간색을 집어가며 보고했다. 그리고, 보고가 끝난 뒤, 타부서와 미팅시 흥미로운 부분은 체크해둔 초록색을 체크하며 회의의 화제를 주도했다.
월요일 오전, 누구나 팀회의를 참석한다. 그리고, 깨알같이 다이어리에 모든 걸 적어둔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질문이 오거나, 일을 할때 무엇을 적었는지 찾기가 일수오ㅛ다. 메모에도 선택과 집중, 이것을 하기위한 정리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중요하고 시급한지, 팀장과 본부장, 조직이 현재 무엇을 제일 고민하고 있는지, 메모를 체계화하고, 3색으로 시각화시켜, 머릿속에 저장시켜 두는 것이다.
2. 아이디어를 빨리 비주얼화하는 방법을 익혀라.
1년도 있지 않았던 이커머스기업에서 매년 기록적으로 성장했다. 그만큼 많이 입사하고, 그만큼 퇴사도 많이 했다. 그 때 나의 팀장님이었던 이팀장님, 그 분은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를 했던 분이었다. 잘나가던 외국계 기업에서, 이직을 하며 스톡옵션도 꽤 받았다는 그분에게 기억나는 건, 짧은 시간이지만 스피디한 그의 업무 속도때문이었다.
항상 빨리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으로 소문난 이팀장의 무기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자신의 개인용 스캐너였다. 그는 책상옆에 본인의 스캐너를 설치해 두고, 이용했다. 나와 같이 신규사업모델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팀장은 회의를 마치자 마자 자리에 돌아와 A4지에 급하게 사업모델을 볼펜으로 그렸다. 그리고 스캔을 해서 내게 보냈다. PPT로 만들어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스캔본을 프린트해서 상무보고를 들어갔다.
나에게 PPT만들라고 했으면, 리뷰하고, 수정하고 1-2일은 걸렸을 일은 그는 A4지에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들고 이미 상무에게 가안이지만, 빠르게 승낙을 받은 뒤, 내가PPT를 만든 걸로 우리는 다음날 대표에게 최종승낙을 받았던 것이다.
이팀장은 무조건 생각이 나면 A4지에 비주얼화를 해서 그스캔해서 공유했다. 회의를 했다. 회의를 통해 그의 그림은 수정되고, 개선되었고, 승인되었다.
다른 회사에 갔을 때, 워드나 PPT로 초안을 만들고, 기획이 틀어지거나, 방향이 바뀌어 수없이 수정하는 일을 반복할때마다 나는 그가 스피드가 그리웠다. 그를 짧게 알았지만, 그는 내가 손꼽는 일잘하는 리더중에 한명이었다.
"생각을 생각만 하지말고 손으로 그려보는 것, 거기에서 시작한다." 이팀장이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그 때부터 나도 A4지를 들고 그려대기 시작했다.
3. 보고는 말하기가 아니라, 습관적인 리허설의 산물이다.
메모를 체계화해서 꼼꼼히 업무를 챙기고, 아이디어를 비주얼화 해서 문서를 빨리 잘 만들었다해도, 결국 인정받는 건 윗사람에게 하는 보고다. 보고를 매끈하게 하지 못하면 다 꽝인 것이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협상기술을 정리한 책 '거래의 기술 (The Art of the Deal')을 냈다면, 나와 같이 일했던 은팀장은 '보고의 기술'(The Art of the Reporting)을 썼어도 될 사람이었다.
나는 사내에서 보고 잘하기로 소문한 김팀장과 같이 일했다. 실무자들이 머리를 싸메고 보고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 있으면 은팀장은 다가와서 '내가 보고해줄께' 라고 말하며 일을 돌어줬다. 그는 "1장 정도 리포트만 써와, 나머진 내가 말로 할께" 라고 했다.
10-15장 PPT를 준비하던 실무자에게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 밑에 직원들이 싫어할 수 없는 리더였던 은팀장.나는 그와 함께 단기 해외출장 룸에이트까지 하며 곁에서 그를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곁에서 지켜본 그는 보고를 앞두고는 꼭 리허설을 했다. 1명이든 여러명이든, 또는 혼자 있어도 그는 꼭 리허설을 하며, 보고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켜냈다. 그는 이야기 속도와 발표 시간까지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깐 5분만 시간내줄레?" 숙소에서 그는 내게 매일 물었다.
나를 앞에 두고 그는 매일 대표에게 보고할 내용을 리허설했다. 그리고, 질문은 없는지? 어땠는지를 계속 물었다. 늘 보고가 힘들어 피하고 싶다는 나에게 그는 얘기했다. "인턴을 앞에두고 보고를 연습해. 보고는 하면 할 수록 는다"
늘 촉박한 보고시간에 언제 리허설을 하냐 싶었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 나는 인턴이나 막내 사원 앞에 두고 보고연습을 했다. 순수한 질문이 들어왔다. 너무 말이 빠르다. 논리가 약하다는 날까로운 이야기도 들었다. 리허설로 단련이 되자, 보고할때 초초한 떨림이 1/2는 사라졌다. 그리고, 보고 내용에 자신이 생겼다.
난 회사생활이 재밌지는 않았지만, 배우는 것은 좋아했다. 그래서 배울 사람이 많았던 회사생활이 즐거웠다. 그래서, 10년 넘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 당신 옆자리, 앞자리, 아니면 저 건너편 그런 사람들이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