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변해버린 나의 회사생활 이야기
마지막 직장을 첫 출근하던 때였다. 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은 3천만원 남짓! 퇴직금을 어디에 쓸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출근일은 돌아왔고, 그렇게 정신없이 새 직장에 출근했다. 첫 출근을 하고나니, 모두 가고 싶어하는 회사에 좋은 자리가 오픈되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일갈하던 선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를 디스하는구나 싶었는데 진짜였다니...'
발령받은 부서의 팀장은 속칭 여왕벌이었고, 동료 파트장은 여왕벌의 근위대장 병정벌이었다. 얼마 뒤에 일게됐다. 내 채용의 비밀을. 내 자리는 사내 채용도 여러번 진행했다가, 두 벌들의 악명 덕분인지 채용은 계속 이루어지지 못했고, 급기야 본부장이 나서사 헤드헌팅사를 통해 뽑힌게 바로 나였던 것이다. 입사 이튼날부터 지속되는 야근을 견딜 수 있었지만, 근위대장격인 병정벌의 계속되는 견제와 여왕벌 팀장의 변덕 덕분에 매일 매일이 피가 말리는 하루였다.
결국 나는 스트레스 탓에 집에서 가서 폭식을 했고, 매일 두 벌들에 치인 꿀벌처럼 단것을 찾아다니다가 체중은 단기간에 10kg까지 불어났다. 체중이 갑자기 늘어나니 매일 매일 어깨와 목, 허리가 점점 고통스러웠다. 어렵게 눈치를 보며 간 정형외과에서는 디스크가 우려된다며, 재활치료와 운동을 권유했다.
"호텔 회원권 판매, 헬스+수영+사우나 이용 1년간 무료"
그날도 어김없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 하는 꿀벌, 내 앞에 회사 앞 호텔에 붙어있는 현수막 문구가 섬광처럼 들어왔다. 고위 임원들과 식사할 때나 갈 수 있다는 고급 뷔페가 있던 그 호텔이었다.
다음날, 점심시간도 혼자 먹는다. 밥을 포기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안내받아 들어간 회원권 판매 사무실,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저기, 회원권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포마드로 매끈하게 머리를 넘긴 직원은 나를 보지도 않고 컴퓨터를 응시하며, 자동응답기처럼 대답을 했다. "부부는 5천만원, 개인은 3천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왜 그랬을까? 그때.
나도 대답이 자동응답기처럼 튀어나왔다.
"그럼 할께요. 개인으로"
직원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차 한잔 드시겠어요? 사장님!"
그렇게 은행에 묵혀두고 잊었던 나의 퇴직금 3천만원의 용처는 갑작스레 호텔회원권이 되었다. 충동적으로 써버린 나의 3천만원! 당시 나는 회사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팀내에서 왕따였다. 팀장인 여왕벌에게 치이고, 병정벌에게는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니, 밑에 직원들도 하나둘씩 나를 제쳐두는 눈치였다. 매일 매일 욕만 먹으니, 나는 바보인가 하는 자괴감에 파묻혔다. 화장실에서야 마음이 편안했던 나. 그래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여왕벌에게는 대장성 과민증후군이라는 핑계를 댔다.
그런 나에게는 한블럭 앞에 있는 호텔은 반전이었다. 들어가면 인사를 받았고, 클럽 라운지에서는 모든 차와 디저틀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를 인정해준다는 거였다. 불과 한블럭 차이였지만, 나는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야근은 일상이었으므로, 호텔로 가는 시간은 어쩔수 없이 점심시간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왕따였으므로 대놓고 갈 수도 없었다. 언젠가 여왕벌 팀장이 병정벌과 함께, 호텔을 지나며 "나 저 호텔에서 운동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걸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호텔로 다닌다는 것이 알려지면,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비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나에게는 어깨와 목통증있었지!'
그날부터 병원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호텔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리고, 주변에 호텔 다닌다는 얘기가 안나도록 갈수록 주도면밀해졌다. 가끔 회사 앞 호텔이다보니 점심뷔페를 이용하는 임직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럴때는 지나가다 배탈이 나서 호텔 1층 화장실을 이용했다거나, 호텔 베이커리에서 선물을 사러왔다고 자연스럽게 둘러대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호텔엘리베이터 보다는 호텔 계단을 이용하는게 더 안전하다는 것도 알게됐다
나는 매일 출근해서는 사무실에서 버티기를 시연했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여왕벌 팀장과, 그의 오른팔인 맞은편 자리의 병정벌 파트장, 그래도 나와 함께 해보려는 몇명의 파트원들을 함께 나는 버텼다. 그리고, 나에게는 호텔이 있으니까, 위안이 됐다. 점심시간에는 호텔로 불이나케 달려갔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힘들면 수면방에서 자고, 여력이 있을때는 헬스를 했다. 좀더 힘이 날때는 수영과 휘트니스를 같이 했다.
호텔은 회원권 영업이 잘 안되었는지, 점심시간에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나를 포함 1-2명이 고작이었고, 수영장은 내가 혼자일때가 많았다. 휘트니스는 고작 2-3명이 다였던 때가 많았다. 호텔 사용이 익숙해지자, 나는 전화영화를 끊어 시작했다. 회사 지원을 받는 전화영어는 여왕벌 팀장 결재를 받아야해서, 내 돈으로 몽땅 결재를 했다. 내 돈이 들어가자, 더 열심히 했다. 하루도 안빠지고 말이다. 점심시간에 맞추고 전화가 울렸다. 호텔 라운지에서, 헬스장에서, 수영장 의자에 앉아 영어로 전화를 했다. 외국인 투숙객도 있던 곳이라, 영어도 자연스러운 환경이었으니, 더 좋았다.
그렇게 매일 1시간 꿀맛같은 점심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그 날, 사우나로 향하던 나는 회사 대표님을 마주쳤다. 둘다 벌거벗은 몸으로 말이다.
"아...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자동반사로 인사가 튀어나왔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할때 한번 본게 다였다. 회사 엘레베이터에서 1-2번 만나는게 고작이었던 그 분을 나체로 만나게 되다니.
"어-어-"
들어가고 나가던 사이에,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대표님의 알몸을 강제 스캔하며 헤어졌다. 눈을 씻고 싶었다. '아차-세상에 완벽한 안전지대는 없는데 내가 방심했구나' 자책하며 크게 후회했다.
대표님을 만났던 건 짧은 순간이 있었지만, 충격은 컸다. 다시 호텔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내 3천만원...'
끌벌인 나에게 호텔은 영글은 꽃망울, 이미 포기할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5분 거리, 대표님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영어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더 조심하자고 생각하며 12시면 호텔로 뛰어갔다.
하지만, 조심한다고 해도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호텔 휘트니스의 구조. 그 뒤로도 1-2번을 만나고 또 나도 모르게 마주치면 자동폴더인사를 해버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렇게 지나치면 전화영어도 어김없이 울렸다. 파우더룸에서, 운동중에 그렇게 전화영어를 했다.
대표님에게 내가 호텔을 다닌다는 걸, 들켰으니, 여왕벌 팀장도 알게 되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를 했지만, 노트북에 얼굴을 파묻고, 더듬이를 치켜 세워보아도 그런 내색은 없었기에 조금씩 안심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매주 1번은 대표님과 나는 발거벗은 모습으로 마주쳤지만,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하고, 받으며 지나쳤다.
"J님, 영어를 참 잘하네."
그러던 어느날, 대표님이 나를 지나치며 지나가듯 한마디를 건넸다. 한적한 점심시간에 전화영어를 하고 다니니, 통화내용이 들렸던 모양이었다. '아풀싸-큰일이다' 처음에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그래도 칭찬인지, 뭔지 욕은 먹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이제 '더 조심해서 사림이 없는 곳을 찾아서 영어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계절은 지나고, 여전히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벌이었던 나, 더는 버틸 수 없다 싶어, 시간이 날때마다 이직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팀장 자리에 전화가 울렸고, 팀장 목소리 톤이 바뀌는 순간, 나도, 병정벌도 감지했다. '높은 분에게 전화가 왔구나 이거 긴장모드다.' 나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통화에 귀를 곤두세웠다.
'오늘은 뭔일이지-'
"J님, 지금 나랑 같이 대표님실에 가자"
여왕벌 팀장이 노트북을 급하게 챙겨들고, 나를 불렀다. 순간 당황하는 건 병정벌 파트장이었다. '왜 내가 아니지'하는 황당해하는 표정말이다.
'업계 1위 미국대표와 임원들이 방문했는데, 지금 대표님 방에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좀 해야된데...'
여왕벌 팀장이 흥분해서 양볼이 빨갛게 홍조가 올라왔다.
"나 지금 괜찮니?" 여왕벌 팀장이 옷매무세를 다잡으며 병정벌 파트장에게 물었다.
"근데 왜 J님을..." 병정벌 파트장이 말끝을 흐렸다.
영문을 모르는 나도 경황이 없어 팀장 뒤를 따라가자, 팀장이 병정벌 파트장에게 나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대표님이 데려오레."
전략자료, 병정벌 파트장이 취합했지만, 사실 자료는 내가 다 만든 거라, 내용은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있었다. 영어PT, 매일 전화영어로 녹음한 내 영어를 집에서 가서 듣고, 원어민 튜터가 수정한 문장으로 바꾸며, 다음날 전화영어에서 써먹었다. 그렇게 고쳐서 3-5번 얘기하니 내 문장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자신이 있었다.
'영어로 농담도 하면서 날라다니셨다구요.'
미국 대표와 임원들을 의전했던 홍보실에서 퍼진 소문은 빠르게 회사에 퍼졌다. 팀내 일벌이었지만, 그나마 사정은 나아졌고, 글로벌 파견자로 선정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나는 왕따에서 벗어났다. 존재감이 생기지, 잊었던 자신감도 생겼다. 해외법인에서 인정을 받고 일하다보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여왕벌도 병정벌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나였던 것임을, 주위의 평가가 나를 규정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조이던 그 굴레를 나와보면,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닌, 더 넓고 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의 암흑같았던 회사생활은 그렇게 1년이, 2년이 되고 그렇게 7년을 일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제일 긴 재임기간을 마친 대표님의 마지막 근무날, 나는 또 대표님과 화장실에서 갑작스럽게 마주치게 되었다.
'아...안녕하세요?'
그렇게 우리는 어색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