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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May 18. 2020

내 에어팟은 어디로 갔을까?

노이즈캔슬링이 필요한 시대

에어팟을 빨래통에 넣어버렸어
분실물센터 (출처-위키피디아)

오늘도 한참동안 에어팟을 찾던 나. 오늘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설마, 혹시나 마음으로 세탁기를 찾아보니, 에어팟이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다. 멍했다. 탈수과정까지 거친 에어팟에서는 물기가 없었다. 탈수과정에서 물기까지 탈탈 털린 것이다. 일단 2-3일간 자연건조를 시키기로 했다. 사실,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에어팟 한쪽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경우도 있었고, 에어팟을 끼고 샤워실에 들어갔다 깜짝 놀란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나마 오랫동안 잘 간수한 것일까?

에어팟 없는 하루, 그 어색함이라니.
늘 얽키기만 하는 이어폰 (출처-픽사베이)

에어팟이 없는 하루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에어팟이 없는 동안, 어쨋든 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유선 이어폰을 다시 끼기에는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방에 줄이 걸리거나,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 가방에 걸리기도 했다. 그리고 제일 불편했던건 얽혀있는 끈을 늘 풀어야한다는 것,한동안 어디를 가든 듣지 않아야하는 소리들을 들어야했다. 나는 에어팟을 출퇴근 뿐만아니라 사무실에서 사용했다. 한쪽 귀에 끼고, 통화를 하곤 했다. 물론 때때로 음악을 듣기도 했다. 작업에 집중할때는 한쪽을 더해, 아예 두 귀에 끼고는 1-2시간의 노동요를 골라, 배경음악으로 들으며 작업에 집중하기도 했다. 듣지 않아도 되는 소음들, 나는 그 소음만 쏙 빼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찾던 우리들만의 작은 자유

사실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낀건 나혼자만은 아니었다. 여직원 들중에는 긴머리를 이용해서 에어팟을 끼었는지 모르는 감쪽같은 경우도 있었다. 업무용도는 핸즈프리로 통화 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대부분은 나처럼 지루한 일에서 벗어나, 음악을 듣는 잠시만의 일탈 용도였다. 그리고, 제일 유용했던 것은 노이즈캔슬링 기능, 사무실에서 사적인 통화들을 하는 빌런들을 피해, 시덥지않은 19금 농담을 버젓이 해대는 꼰대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팀장들은 모두 자신만의 인생레파토리들을 가지고 있다. 업무와 별반 연관성이 없지만, 꼭 끼워넣는 자신만의 라떼이야기, '내가 서울대에 있을때, 지주사에서 근무할 때, 미국 근무에서 일할때 등등등.' 이런 이야기가 들릴때, 급체가 온듯, 에어팟을 끼고는 했다..    

오늘도 팀장의 라떼가 들려오면 조용히 에어팟을 낀다. (출처-픽사베이)
 회사 그만두면 뭐할려고 블라블라

3번째 회사부터는 경력이라 대졸신입공채도 아니여서, 퇴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늘 면담에서 나오는 질문은 건 이거였다.

"회사 그만 두면 뭐하려고?"

팀장, 본부장은 나를 붙잡고 집요하게 묻고는 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을 정도로.

때로는 솔직하게 얘기하기도 했다.

"그냥 좀 쉬고 싶습니다." 또는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대답했다가는 면담은 길어졌다. 몇번의 경험으로 나는 체득했다. 그렇게 묻고는 정작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보다는 자신만의 라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업군으로 이직을 했어요."

다른 사업군으로 이직했어요. 이게 제일 깔끔한 퇴사의 변이었다. (출처-픽사베이)

결국 이정도로 답변을 하는게, 깔끔하다는 것을 경험상 알게되었다. '다른 사업군' 은 경쟁업체가 아니라는 것을 안심시켜주고, '이직'은 직장인으로 또 일한다는 것으로 한번더 안심을 시켜주는 가장 알맞은 이직사유였던 것이다.

에어팟프리, 때로는 귀에 자유를 줘.

한번 세탁기에 돌아간, 에어팟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햇살과 바람, 자연건조과정을 거쳤지만, 무선페어링이 시작되기 전에는 반드시 한번 전원에 꽂아져야 했다. 무선재생시간도 이전보다 부쩍 짧아졌다. 세탁과 헹굼, 탈수과정을 거쳤으니, 이해는 갔다. 그래서, 에어팟을 사용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불편했냐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없이도 잘지내게 되었다. 듣기 싫은 노이즈가 들리면, 잠시 나갔다 오면 되고, 그럼에도 꼭 들어야 한다면, 안듣기 위해 집중을 하게 됐다. 그리고, 부가로 얻은 소득은 늘 듣던 팀장의 라떼도 매번 조금씩 변주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회사를 나온 지금은. 아주 가끔은 그 시절, 그렇게 싫었던 그들의 라떼도 가끔씩 그립다는 사실, 그렇게 서로 부딪히며 일했던 그 시절이 그래도 생각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있다. 또 언제 그랬냐는듯, 나는 에어팟을 귀에 낄꺼라는 것을.

레옹마틸다 에어팟 케이스 (출처-nabiy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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