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신기한 일이 생겼다.
가끔 주말에 사무실에 들르곤 했다.
회사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생각나면 걸어서 갔다.
꼭 가야할 일도 아니지만, 무슨 특권이 있는 것처럼,나는 생각나면 사무실에 갔다.
그저 무언가를 가져다 놓거나, 무언가를 가지러 가는 일인데도 말이다.
굳이 시급한 것도 아닌데, 나는 굳이 왜 갔을까?
생각해보면, 주말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좋았다. 출근보다 퇴근이 좋듯, 북적이는 사무실보다 고요한 사무실이 좋았다.
좋아하는 부분은 한가지 더 있었는데,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해야할까?
사원증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하면, 내 발걸음에 따라 사무실에 조명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두둥-두둥-두둥-두둥
조명소리가 마치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스타가 된 듯, 나는 그 순간을 즐겼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 그런 소소한 즐거움에 나는 가끔 주말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갔다.
그 날도 그랬다. 토요일 저녁, 유튜브를 보다 불현듯 사무실 가습기를 가지러 사무실에 갔다.
가습기를 청소해서 월요일에 가져다 놓을 생각으로.
모자를 푹눌러쓰고, 츄리닝에 크록스를 신고는 사무실로 걸어갔다. 경비분에게 보여줄 사원증을 한 손에 쥐고는, 빙빙 돌리면서 엘레베이터로 걸어갔다.
근데 그럴때 가끔 누군가를 만나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다행히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았지만, 하지만, 그 날도 신기하게 그 확률을 벗어났다.
엘레베이터의 층수가 올라가고, 문이 열리자마자 내 앞에 상무가 서있었다.
마치 험담하던 사람이 내 뒤에 있던 것처럼 나는 크게 놀랬다. 그도 나의 캐쥬얼한 모습에 놀란 건지, 아님 누군가를 만난 것에 놀란 건지 잠깐 당황한듯 보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뭐-두고가서" 내리며 내가 말했다. 어색하면 말이 짧아진다더니. 그렇게 나는 내리고, 상무는 탔다.
"그래-" 상무가 말했다. 엘레베이터 문이 닫힐때, 나는 안도했다.
휴-주말에 괜시리 상무를 만나서 숙제를 받는 건 아닌지 놀랬던 나였다.
근데 닫히던 엘리베이터문이 중간에 다시 열렸다.
나는 순간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어...."
상무가 무슨 할 얘기가 있는것 같은 표정을 했다.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
".....아니다, 다음에 보자-"
상무의 말이 끝나자 엘레베이터문이 닫혔다.
뭘까 이 기분은.
엘레베이터에서 잠시 나는 서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지하까지 내려가자. 나는 황급히 사무실로 걸어갔다.
괜히 사무실에 왔다. 가습기를 들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은밀한 비밀이 들킨 사람처럼 말이다.
다음주 월요일 아침,
그날도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세척한 가습기에서는 깨끗한 미스트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코를 대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은 이 깨끗함. 그건 좋았는데.
사람이 있는 사무실은 나에게 맞지 않는걸까. 피곤했다.
"주말에 임원 발령이 났데요. 개인별로 전화를 돌렸데요"
옆자리 김대리가 내게 얘기했다.
고개를 돌려 상무의 자리를 바라봤다. 불꺼진 그의 자리.
"일요일에 사람들이 나와서 짐을 다 옮겨갔데요."
김대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의 자리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의 사무실에는 정녕 아무것도 없었다.
상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석에서 한편에서는 그를 승부사라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냉혈한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다른 한편에 있었다. 그가 나와 동료들을 해외로 보낸 뒤, 그 성과로 상무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같이 고생했던 내 위의 팀장을 내친 그가 좋아보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상무로 승진을 한 날, 나는 그를 그 주말처럼 갑자기 맞닥뜨렸다. 정수기 앞에서.
"좋으세요?"
나는 분명 "좋으시죠-"라는 얘기를 해야했지만, 말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말이 헛나왔다. 비아냥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를 했다. 나는 얘기를 한 뒤, 내가 놀라 잠시 있었다. 그는 그저 물을 담아갔다. 그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전 9시, 자동으로 켜지는 TV속에서 그룹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미래 성장... 위기대응...새로운 리더...성과중심주의..."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카페로 간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다.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에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긴 뒤, 인류의 절반이 재가 날리 듯, 사라지듯이, 군데군데 별들이 사라진 자리가 보였다. 군대의 별처럼 직원들의 별인 임원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햇살 비추는 그 좋은 방에 있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날, 나는 상무의 마지막 모습을 내가 봤다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왜 였을까? 조금의 죄책감이었을까?
"좋으시요?"라고 한번더 묻는다면 상무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의 20년 직장생활의 끝이었다.
알았다면, 수고했다고 한마디 해줄껄 했다.
주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가끔 신기한 일이 생겼다.
하지만. 난 그 뒤로, 주말에는 사무실에 가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