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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May 31. 2020

사무실에서 손톱깎기

어느덧, 회사에도 찾아온 여름.

Why do Koreans cut their nails in the office?
(한국인은 왜 사무실에서 손톱을 깍죠?)
포스코 강판으로 만드는 손톱깎기 (출처-헬로우포스코)

흥분하면 그녀는 영어부터 나왔다. 홍콩출신 직원인 엘리자베스. 조용한 성격의 그녀가 흥분한 건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내가 엘리자베스에게 그녀가 중국인이라고 한 때였다. 엘리자베스는 대화중 갑자기 정색을 내게 말했다.

"I'm from Hong Kong, not from China.(나는 홍콩사람이야, 중국사람 아니야)"

업무 협조를 위해 차 한잔을 하자고 얘기했을 뿐인데, 엘리자베스는 전혀 이해가 안된다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그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줄 뿐이었다.

 


돌아와서 둘러보는 사무실의 풍경

내가 너무 과민한 걸까? (출처-네이버블로그)

1. 손톱깎는 이팀장

회사에서 이팀장은 모든 게 완벽했다. 자신감, 업무능력, 그리고, 유머까지, 모두가 그를 좋아했고 따랐다. 하지만, 이팀장의 이해가 안가는 행동이 한가지가 있었는데, 수시로 그의 자리에서 들리는 이 소리였다.

"또각, 또각"

처음에 나는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눈을 들어 살펴보니  예상이 맞았다. 그는 수시로 손톱깎기를 꺼내 사무실에서 손톱을 깎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이팀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곧잘 서랍에서 손톱깎기를 꺼내 사무실에서 손톱을 깎는다는 걸 나는 관찰 할 수 있었다. 때로는 손톱이 책상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무슨 일일까?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가?

엘리자베스와 대화한 이후, 몇일 뒤 내 옆자리에서 손톱을 깎고 있는 최과장이 딱걸렸다.

"왜 손톱을 사무실에서 깎는거야?" 나는 물었다.

"팀장님이 깎는걸 보고, 나도 깎았지. 이제 집에서 손톱깎는게  어색해졌어". 내 자리에서 깎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태연히 말하는 최과장. 팀장에서부터 퍼진 손톱깎기의 연쇄효과였다.

'맙소사...'

TV시리즈 ' 내 친구 바야바' (출처-네이버블로그)

2. 털많은 윤팀장

회사의 비즈니스 캐주얼은 여름에는 조금 느슨해졌다. 매주 금요일은 캐주얼데이였다. 그 날은 반팔티와 청바지도 허용했다. 물론 회의나 미팅이 있으면, 자켓은 걸쳐야했다. 그래서, 자켓은 대부분 하나씩 사물함에 넣고 다녔다. 업무 미팅이 있어서, 옆부서 윤팀장과 미팅을 진행하는 어느날, 윤팀장이 미팅에 앞서, 우리들 앞에서 기지개를 폈다. 그 날따라 몸에 달라붙는 반팔티를 입은 윤팀장,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 전, 기지개를 하는 그의 양팔사이로 길고 풍성한 겨드랑이모가 노출됐다. 1차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회의 내내 시선을 거슬리는 그의 반팔 티셔츠,  그의 공격적인 점 두개. 제3의 눈이 계속 날 보고 있었다. 시선을 회피하고 싶지만 계속 시선이 갔다. 그날은 버리고 싶었다. 내 두 눈을.

"니플밴드를 사줘야하나." 내가 조용히 얘기하자, 뒷자리 윤대리가 얘기했다.  

"요즘 그래서들 왁싱을 많이 하더라구요."  

최근에 왁싱을 받고, 너무 만족했다는 그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영화 '고질라, 킹오브더몬스터즈' (출처-다음영화)

3. 용트림하는 이상무

상무의 자리는 우리의 바로 앞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여닫이 문이 없었다. 전무부터 여닫을 수 있는 문을 가졌다. 소화불량인 상무는, 늘 트름을 달고 살았다. 조용한 사무실에 가끔 타자치는 소리만 남는 정적이 흐를 때면, 고요를 깨는 상무실의 용트림.

"꺽-꺽"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당황하고, 소름돋았던 그 소리가, 어느새 우리들에게는 익숙해졌다는 것이었다. 무서웠다. 사내 상하의 권력관계 속에 그저 익숙해진다는 게. 2-3주 이후에는 아무도 상무의 트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회식자리에서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상무님 트림소리를 들으면 제가 다 시원하더라구요.하하하..."

거나하게 취한 팀장이 상무에게 술 잔을 채우며 웃었다. 상무도 흐믓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나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에게 '트름 갑질'을 하던 상무는 이제 더 트름을 하겠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처럼 난 고민에 빠졌다. 나만 이상한건가 하고 말이다.


청결과 정돈은 본능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이며, 대부분의 중요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 벤자민 디즈라엘리-
죄송합니다.ㅠㅠ(출처-클리앙)

반성한다. 나부터, 사무실에서 나는 종종 코를 후볐다. 칸막이 너머로 안보이겠거니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CCTV로 촬영되고 있는 사무실에서 비밀은 없으니 인사팀에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곧 여름이다.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출처-인터넷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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