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번 훈련병,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그해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고시도, 선배에 대한 짝사랑도. 어느 하나도 매듭짓지 못한 채, 군인이 된 나는이름을 지웠고124번으로 불렸다. 다행인지도 몰랐다. 훈련소 내무실은 밤만 되면스팀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매일잠들며내일은 나의 작은방에서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라는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새벽이면 불침번을서며 행정반에서 나오는 라디오를 들었다. 주전자의 물끓는 소리, 그리고 문틈으로 나오는 노래 '그리움에 대하여'.이은미 2집의 그 노래를들었다.눈물이 왈깍 흘러내렸다. 용기 내지 못한 부끄러움에, 혼자라는 외로움에 사무쳐 눈물을 흘렸다.
이은미 2집 커버 (출처-벅스뮤직)
지하
(출처-픽사베이)
헌병단 행정병. 근무 스케줄이 펑크 나면 어쩔 수 없이 영창 근무를 서야 했다. 영창에는 대기병들이 있었다. 탈영, 절도, 강간, 살인,상사하기 힘든 사건을 저지른 군인들, 재판과 형을 기다리는 그들을 우리는 대기병이라 불렀다.그들은 짧게는 2주, 길게는 서너 달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교대를 위해 영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길고도 깁었다. 다가갈수록 차디찬 쇠의 냄새가 났다. 철장을 사이에 두고 가둬진 사람과 가둔 사람이 있는 곳. 햇볕이 좋을 때면 헌병들은 대기병들을 작은 뜰로 이동시켰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모두가 햇볕을 쬐었다. 쪼그려 앉아 쪽잠을 자는 대기병들과 내 위로 따뚯한 햇살이 비췄다.
편지
(출처-픽사베이)
중학교 2학년, 우연히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간 뒤부터,항상 무언가를 썼다. 하지만, 아침에 붙이지 못하는 지난밤의 편지처럼, 모든건 쓰자마자 사라지는 청춘의 낙서일 뿐이었다. 입대 후, 선임병들의 부탁으로펜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항해사가 되고 싶은 취사병부터 F1 레이서가 되고 싶은 운전병, 여행작가가 되고 싶은 보일러병까지, 진실이고 싶지만 여물지 않은그들의 희망들을 편지에 적어 보냈다. 다른이의 이름이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면, 어디에서인가 얼굴도 모르는누군가에게서 답장이 왔다. 두근두근 또답장을 적으면, 어느새인가 면회가 왔다. 그렇게 그들은 누군가와 연애를 했다.
시작
(출처-픽사베이)
출근 첫 날도 눈이 몹시 내리던 겨울날이었다.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회사 맞은편 편의점에서계속 캔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첫 회사는 강남이었다. 출근길 입은 양복은 퇴근길에는 땀에 젖고 어딘가 헤져있었다. 퇴근길,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그제서야 내 하루를 위로했다. 첫 직장을 다닐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1년 6개월뒤 퇴사를 결심했다. 무언가 쓰고 싶었다. 새벽하늘을 보며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내 이름으로 쓴 편지를.퇴사의 변, 그게 나의 첫 사직서였다. 동터오는 아침에 편지를 들고 회사에 가서 편지를 책상에 올려두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회사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