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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May 31. 2020

인생의 중간에서 새로 시작하기

남들보다 늦은 인생이라도 괜찮아.

나는 남들보다 늘 반걸음 늦었다.
체력장 (출처-경향신문)
체력장 4급

돌아보니 그랬다. 나는 걸음도 느렸고, 달리기도 느렸다. 남들보다 밥도 천천히 먹었다. 학교에 들어와보니, 내 속도가 남들보다 반박자 정도 느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보다 느린 움직임은 운동장에서 나타났다. 모두가 모인 체력장이 제일 곤욕이었다. 체력장이 끝나면, 체육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등에 한우 등급처럼 특급부터 4급 까지 도장을 찍었다. 흙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나는 4급이 찍힌 손을 가리며 그렇게 부끄러웠다. 그 날은 입과 코에서 흙이 계속 나왔다.


콞롬비아의 자살골로 울먹이던 어린 팬 (출처-SBS)
에스코바르의 자살골

대학교 1학년 단과대 축구대회 결승전이었다. 주전 골키퍼 선배의 갑작스러운 배탈로 후보였던 나는 연장전의 콜키퍼로 워밍업도 없이 갑작스레 출전했다. 그리고, 연장전 자살골을 기록했다. 경기 이후, 학교에서 내 이름 대신 '에스코바르'로 불렸다. 풍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대학 1학년, 좌절감이 몰려왔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국가대표 골키퍼로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뒤, 자국에서 살해된 선수이다. 자책골의 충격은 2학년에도 이어졌다. ROTC 체력 테스트인 오래 달리기, 나는 선두와 한바퀴 이상 차이가 나며 탈락했다.

IMF 구제금융 보도 캡쳐 (출처-MBC)
2번의 공채신입사원

제대 후, 졸업이 다가왔지만, IMF 경제위기로 모든 채용이 중단되는 취업빙하기가 왔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겨우 공채로 입사한 첫 회사는 결국 2년을 못 채우고 나왔다. 퇴사의 변을 손편지로 써서 팀장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일주일 정도 팀장이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돌아오면 없던걸로 해주마."

2년 뒤,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공채신입으로 2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적게는 3살, 많게는 8살이상 차이가 나는 동기들과 2번째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 아침에 깃발을 들고 하는 구보는 여전히 힘들었으며, 연수의 마지막 코스 지리산 등반은 발에 힘이 풀려 눈덮인 절벽에서 떨어질뻔 하기도 했다. 이미 대학 동기들은 대리나 과장이 되어있었지만,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었다.

웹툰 '미생'의 한컷 (출처-다음웹툰)
백조의 회사생활

그렇게 시작된 회사생활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0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럴싸했다. 그룹 차세대 리더에 뽑혀, 핵심부서 이동, 해외출장에 이어 해외법인에서 근무했다. 수면 위에서는 백조처럼 유유히 떠 있었지만, 대신 수면 아래에서는 바둥바둥 헤엄을 쳐야했다. 업무 갈등, 회사왕따, 사내정치에 휩쓸렸다. 걷다 엎어지고, 일어나서 다시 걷기를 반복했던 나날들.

'낙오자, 뒤쳐지면 안돼'

힘들어도, 주위 누구도 나와 다르지 않다고, 나 혼자 그러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지는 못한다면, 그래도 뒤쳐지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처럼하며 살았다.


영화 '쉘위댄스' 의 한장면 (출처-가톨릭평화방송)
신도림역의 쉘위댄스

신도림역, 그 날밤도 야근을 마친 나는 발디딜 틈이 없는 역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11시 쯤이었나, 몸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지만, 아직 한참을 더 가야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는 보았다. 지하철 역에서 춤을 추는 남자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내 눈을 의심했지만, 사실이었다. 정장을 입은 중년남자가 양발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신도림역의 쉘위댄스. 자우림의 노래 가사처럼 '신도림역에서 미친척 춤을 추는' 그 남자는 더 없이 행복해보였다. 그 얼굴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퇴사 인사 (출처-조선일보)
퇴사선언

'이제 더 이상 쫒아가지 않을꺼야.'

형광등의 필라멘트가 나간 듯, 갑자기 한계가 왔고, 나는 사표를 냈다. 남들보다 늦었다고 해서 늘 쫓아가는 삶은 빈곤하다. 그리고 고달프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렇게 살지 않기로, 그게 길이라면 차라리 멈춰서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큰일이 닥치면 무덤덤한 것처럼, 사표를 낸 뒤, 세상은 무덤덤했다. 그렇게 자발적 실업자가 된 나는 그 날부터 늘 꿈꾸던 하루를 살았다. 아침에 수영을 가고, 낮에는 신발을 팔았다. 그리고 밤에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썼다.

벼룩 이야기 (출처-광수생각)
인생의 중간에서 새로 시작하기

찰스 핸디의 책, '코끼리와 벼룩'중 들어가는 글의 제목은 이렇다.

'인생의 중간에서 새로 시작하기

안정된 미래를 버리고 새롭고 무모한 모험을 택한 이유는 바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랬다. 거창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저 내 보폭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뒷걸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온전한 걸음을 걷고 싶었다. 내 몸에 맞는 속도로, 조금은 느릴지라도 내 걸음을 걷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니체-
아도이 노래는 나의 노동요다. (출처-지니닷컴)
포트폴리오 인생

부끄럽지만, 나의 명함에는 블로거, 브런치 작가, 쇼핑몰 대표가 적혀있다. 사실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지금은 그저 버티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명함은 나의 선언문이다. 내 보폭과 내 걸음걸이로, 내 속도 대로 앞으로 걸어 가겠다는, 일종의 다시 시작하는 내 인생의 선언문 말이다.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릴 때,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릴 때 희열을 느낀다. 쇼핑몰에서 신발이 하나 팔릴 때, 기쁨을 느낀다. 그런 기쁨과 희열이 모여 나의 하루를 빛나게 만든다. 찰스 핸디의 책 '코끼리와 벼룩' 에 나오는 벼룩처럼, 누구를 쫒아가지 않고, 나의 혼자 힘으로 말이다.

찰스 핸디 작, 코끼리와 벼룩 (출처-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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