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면서 해외에서 일한 해외출장 이야기
한번 가기가 어렵지, 갔다 오면 계속 가게 된다.
처음 공항에서 벅찬 마음으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인 인 디 에어(Up In The Air)의 한 장면, '그래 나도 드디어 비즈니스맨이 되는구나'
상무가 나를 보고 산통을 깼다. 앞으로 계속 가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랬다. 해외출장은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에는 계속 가게 되었다. 어느새 집 문 앞에는 출장가방이 놓여 있었다. 나라는 달랐지만, 늘 환경은 비슷했다. 짧은 기간, 비현실적 업무강도, 닥치고 해낸 뒤 오는 잠깐의 휴식. 회사는 상무의 말처럼 그렇게 보낸 사람을 또 내보냈다.
해외출장은 직장인에게는 분명 좋은 기회이다. 내가 생각하는 해외출장의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
1. OLED 와이드 커브드로 벌어지는 시야
오래된 모니터를 사용하다, 최신형 와이드 커브드 모니터를 바꾼 뒤 느끼는 충격. 서울과 한국이 다였던 나에게 해외출장은 시야를 그렇게 파노라마급으로 넓혀주었다. 아시아, 유럽, 북미시장을 알게 되었고, 다국적 동료들과 일하다 보니, 한국 외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물 안 서울 사무실에 있었다면 절대 만날 기회가 없었을, 아니 만났더라도 말 한번 건넬 수 없었을법한 유명 회사 임원들과 바로 엎에서 미팅을 하면서, 활자가 아닌, 글로벌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막상 만나면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자신감도 생긴다. 하버드, MIT출신이 우리보다 20-30배 똑똑한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2. 매일매일이 벼랑 끝인 영어 서바이벌
해외출장에서 영어는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한 동앗줄, 붙잡고 버티는 생존수단이다. 현지 언어가 있는 나라의 경우, 그나마 현지 직원이 영어를 해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지. 1시간도 안 걸릴 일을 영어로, 현지 언어로, 시간은 제곱, 세제곱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듣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 좀더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요령이 생기게 되고, 상처에 굳은살이 배기듯 맷집까지 획득한다면, 어느 순간 영어의 파도 속에 서핑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아침 6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대부분의 출장은 항상 시간에 쫓긴다. 2주에 할 일을 5일에 마치고, 일요일 저녁에 귀국, 월요일 출근해서 보고를 하는 식이다. 그래서, 매일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시간관리부터 미팅 관리, 그리고 문서작업까지, 나의 몫을 잘감당해야 하는 게 해외출장이다. 내가 아프면 다른 동료에게 폐가 되기 때문에, 건강관리도 역시 꼭 챙겨야 한다. 게을러질 수 없는 환경이다. 그리고, 출장자들은 어디서나 노출되기 마련이다. 해외법인 직원들과 현지직원들이 늘 지켜보고 있다. 어차피 시차로 인해 자연스럽게 2-3일간은 잠은 못 자게 될 테니, 해외출장을 계기로 아침형 인간, 운동형 인간으로 나를 탈바꿈을 하기 좋은 기회다.
4. 그래도,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준다.
해외출장 중 대부분의 시간은 늘 긴장하며, 루틴을 유지한다. 하지만, 24시간 늘 일만 할 수는 없고, 일을 고민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즐길 궁리를 하는 게 사람이다. 장기출장중이라면 주말에는 반나절이라도 유명 관광지, 식당을 찾아다닐 수 있다. 귀국 비행기안에서 떠올릴만한 1-2가지의 추억은 그렇게 만들 수 있다. 1-2시간 일찍 일어나 늘 아침산책을 하는 동료도 있었고, 작은 그릇을 수집을 동료도 보았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중 하나였다. 나의 수집대상은 젠틀몬스터였다. 해외출장 갈 때마다 신라면세점 젠틀몬스터에 들려 안경테를 샀다. 유일하게 할인을 허락하는 곳, 그곳에서 나의 출장의 시작했다.
5. 넌 누구냐? 새로운 나의 발견
해외 출장은 낯선 환경 속에서 또 다른 나를 찾게 만들기도 한다. 조용하고 소극적었던 서울의 나, 해외출장은 나를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나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해외출장을 가면, 자연수명이 감소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음에도 또 가게 되었다. 잠시 변신하기 위해서 말이다.
해외출장이 좋은 5가지
1. 영어+α (자신감)
2. 월급 외 회사의 추가 지원 획득(호텔, 출장비 등)
3. 동종 해외 파트너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4. 해외 도시생활 경험
5. 쌓이는 항공사 마일리지(가끔 되는 업그레이드)
여기 여행 온 거 아닌 거 알지?
맞다. 나라만 옮겼지 똑같은 회사원 생활의 연장선상이기도 한 해외출장, 그럼 안 좋은 점은 무엇일까?
1. 공휴일이 사라진다.
애석하게도 현지 공휴일은 한국의 공휴일이 아니다. 그래서? 운이 나쁘다면, 현지 공휴일에도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사와 같이 일하기 위해서다. 현지 릴레이 연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출근하는 한국인 직원들, 나는 자주 보았다. 또, 반대로 한국의 공휴일은 현지의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일을 하게된다. 그래서, 결국 달력에서 공휴일이 사라지게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2. 워라밸이 무너진다.
한국에서 지켜지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인천공항을 떠나는 순간, 바로 소멸된다. 출근하면 카드에 펀치를 찍는 서유럽의 어느 사무실에서, 나는 근무시간이 끝나면 컴퓨터와 사무실 불이 자동으로 꺼지는 서울의 사무실이 그들의 근미래모습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잠깐 했다. 6시에 현지 직원들이 퇴근하면, 그때부터가 새로운 주재원들의 세상, 또 다른 업무시작이다. 마치 은행원들이 셔터를 내리고, 일을 하는 것처럼, 주재원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은 그때서야 본업무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3. 꼰대는 어디에도 있다.
법인장, 주재원, 장단기 출장자로 이어지는 사다리는 거기서도 견고하다. 운이 나쁘면 본사에 불만을 품은 꼰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는 한참 떨어진 그곳에 본사에서 좌천된 꼰대들의 클러스터가 있었다면, 와신상담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주로 외국인 거주지에 모여사는 그들에게, 법인장은 왕이요, 대통령이다. 법인장의 요청에 따라, 주재원은 교체되거나, 귀임하기 때문에 주재원은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만난 꼰대가 최악인건,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출장이 끝나기 전까지는.
4. 돈이 빠져나간다.
경기 침체로, 회사의 출장 조건도 더욱 까다로워졌다. 출장 예산이 늘어나지 않으니, 출장인원도, 출장기간도 준다.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현지 물가 덕에 출장 혜택은 갈수록 떨어짐을 느낀다. 출장 후, 들어오던 출장수당을 포함한 월급도, 선물이다 기념품이다 추가로 쓴 금액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남는 게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은 괜히 대기업이 아니다. 딱 일한 그만큼의 보상만을 허락하는 곳임을 또 한번 알게 된다.
5. 외롭다. 진짜.
해외출장은 전화통화, 영상통화를 아무리 해봐도 정말 외로운 일이다. 한국식당을 가도 살이 찌지 않고, 살이 빠지는 건 모두 외로움 때문이다.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출장의 밤. 하늘의 새만 봐도 가족들이 보고 싶어진다는 동료의 얘기가 메아리 칠 정도면 이제 돌아갈 때다.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다'로 정신승리를 외쳐봐도 결국 외국에서 나는 혼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 좋은 해외 주재원 자리도 마다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례도 종종 나오는 것이다.
해외출장이 싫은 5가지
1. 초밀도의 업무강도와 스트레스
2. 휴일이 없을 수도 있다.
3. 꼰대를 만나면 도망칠 곳이 없다.
4. 돈을 더 쓸 수 있다.
5. 외롭다.
영화 '인디에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혼자였나? 친구가 있으면 견디기 쉬워. 사람은 누구나 부조종사가 필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