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당신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전사원 근태 로그를 뽑는거야."
"근데 주임님, 근태가 뭐예요?"
박주임은 팀 공용 컴퓨터에 나를 안쳐두고, 침을 튀기면서 설명하다,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룹 연수를 마치고, 정신없이 시작된 첫 출근날, 나는 원래 지원한 영업관리팀이 아닌 인사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거짓말은 안 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나. ‘인사초짜신입’ 그게 나였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설명했다. 긴 이야기의 요점은 인사업무의 출발은 출, 퇴근 관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였다. 그 만큼 중요한 업무를 나에게 알려주는 거고, 이 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30분 일찍 출근, 30분 늦게 퇴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프로그램은 금방 돌아갔지만, 정리에는 시간이 걸려 퇴근은 늘 늦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초짜티는 안 나게 제법 익숙해졌는데, 초등학생처럼 회사생활에 궁금증은 늘어갔다. “조직도에 분명히 인사팀으로 돼있는데, 여기 두 명은 누군가요?”박주임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박주임은 그 두 명은 감사애들이라고 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주임은 입사는 빨랐으나, 승진은 늦었다. 다른 주임들보다 나이가 5살 이상은 많았기 때문에, 빠른 공채 과장이나 차장들은 그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동년배였다. 그는 늘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면, 곧잘 애들이라 뒤에서 부르곤 했다. 몇 주 뒤, 신입사원 면접진행 때문에 임원회의실을 들락날락 뛰어다니고 있었던 나는, 박주임과 비서를 대화를 통해, 그 애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임원회의실 옆 비상문과 연결돼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회사에도 '비밀의 방'이 있다니. 흥미진진했다.
어느 날, 박주임이 나를 불렀다. 그 비밀의 방으로 가자고 말이다. 비밀의 방 내부도 구경할 겸 마음 편하게 따라 들어갔지만, 막상 회의주제는 무겁기 그지 없었다. 커머스본부 대상 감사준비가 그날의 주제였다. 어느 협력사 직원의 제보를 통해 MD들 중 일부가 부당이득의 취했다는 증거를 잡았고, 커머스본부장외에 다른 임원까지 연계되어 있는지를 지금 ‘수사중' 이라고 했다. ‘수사라니.' 하고 생각하는 순간, 최차장이라는 분이 '조사중'으로 바로 단어를 정정했다. 책상 위에는 법인카드 내역, 컴퓨터 캡처 화면, 사무실 통화내역, 회사 골프클럽 방문기록들이 뭉치로 쌓여있었다. 마치 범죄수사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화이트보드에는 어지럽게 이름들과 화살표들이 점과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협조를 구하는 회의에 협조를 약속하며, 나왔는데도 나는 몸이 욱신거렸다. 그렇게 몇번의 회의에 들어갔고, 박주임은 그들이 요청한 자료를 받아, 나에게 전달했다.
당시, 나는 사실 남 걱정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믿을건 반듯한 인상뿐이었는데, 매일매일 업무를 쫓아가기도 버거웠으니까. 오늘은 무슨일이 생길까? 기대반 불안반한 날들이었다. 결국 나의 반듯한 인상빨은 오래가지 못했고, 6개월 만에 원래 내가 지원했던 영업본부로 발령이 났다. 떠나는 날, 발령사유에 개인의 CDP를 위해라고 적혀있기에 박주임에게 또 물었다."근데 주임님, CDP가 뭐에요?” 이번에도 박주임이 한숨을 내쉬었다, 6개월 만에 부메랑처럼 근태업무룰 받게된 박주임은 삐죽 나온 입으로 얘기했다. “경력개발(Career Development Pass)이라고."
"근데 나 투잡 뛰면 어떨까? 사업자 등록증도 만들고...."
유튜브 열풍인지, 투잡 열풍인지 아님 삶이 빡빡해져서인지, 인사팀 6개월 단발 경력인 나에게 주변의 상담 요청이 많아졌다. 이런 걸로 인사팀에 물어보기는 부담스럽다는 거였다. 영업본부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번외로 인사상담이라니. 어쨌든 성실하게 답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부업은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였다. 2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겸업금지 조항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국내 대기업들은 모두 직원의 겸업을 금지하고 있다.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서안의 세부조항을 보면, 겸업금지 조항이 있고, 이 규칙을 어긴다면,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을 것이다. 궁금하다면, 내일 회사로 가서 회사의 취업규칙, 나의 근로계약서를 자세히 읽어보시라.
두번째,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
최순실 아이패드로 잘 알려진 단어이다. 뉴스타파가 보도해서 화제가 됐던 그 위디스크 사건에도 등장한다. 대표가 도감청 기능이 있는 앱을 개발해서 직원들에게는 메신져 어플을 깔라고 하면서, 같이 다운로드를 하게 만들었다. 이 앱을 통해 그 대표는 직원들의 통화내역, 문자내용, 위치, 이미지검색, 카메라 조작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인가? 이젠 모든 디지털 기기는 '기술적'으로 해킹이 가능하다. 5G의 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나는 5G시대가 무섭다. 국내 대기업의 대부분이 감사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왜일까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고, 직원들을 모니터링한다. 다만, 그 규모와 정도와 수준이 다를 뿐. 연구소의 직원들은 입사하면, 개인정보서약서를 추가로 받는다. 그리고 핸드폰에 추가 로 앱을 깐다. 핸드폰 모니터링 앱이다. 그들이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보안이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사폰과 개인폰 2개를 사용했다. 디지털 모니터링과 포렌식기법은 주로 전직 검찰, 경찰 출신들이 대표 직함을 달고있는 컨설팅회사로부터 기업으로 전이가 되고있다. 금융권이 특히 빠르게 도입한다고 했다. 회사는 실리콘밸리 스타일로, 창의적 문화를 만든다며, 개인의 지정자리를 없앴지만, 그로인해 지정된 무선와이파이망으로 모든 업무를 보게 됨으로써, 디지털모니터링이 쉬워진다는 것은 소수만이 알고 있다. 물론 이 모든게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을 수 있다. 우리 같은 평범한 회사원은 회사에 금전적인 큰 손해를 끼치지 않으니까, 기껏 메신져로 팀장과 상무를 욕하거나, 회사를 비방하는 정도지 않나. 회사는 당신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모든 것이 비용이므로.
그래도 정말 부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한 조언은 두가지다.
첫째, 사업자등록증은 와이프 또는 부모님 명의로.
사업자등록증 같은 투잡을 인정하는 문서는 나에게 절대불리한 증거로 남을 수 있다. 우회할 수 있도록 와이프나,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혹시 만약에 회사로부터 추궁을 당한다면, 가족의 사업을 퇴근 이후 도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둘째, 자나깨나 말조심.
믿는 동료, 동기, 선후배라 해도 내가 다른 부업을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 그 말은 누군가에게로 흘러가게 되어있다. 안좋은 소문은 빠르다. 사무실 통화도 조심해야한다. 누군가는 내 옆에서, 뒤에서 듣고 있을테니, 회사일이 아닌 통화는 주변에 티가 나게 돼있다.
이 이야기를 듣던 분들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국세청으로 개인소득신고를 하면, 회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이렇게나 조심을 해야 하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문제없이 오랫동안 부업을 한 분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걸 믿고 나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부업을 하다가 회사에서 소명요구를 되돌릴 수 없다.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것이니, 미리 조심하자는 이야기다. 물론 부업으로 들어온 돈 역시, 회사에서 알 수 없다. 회사는 급여를 주는 통장계좌 외에는 어떤 금융정보도, 가지고 있지도, 열람 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또렸하게 기억하는 건 최차장의 얘기였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감사애라고 불리던, 그 최차장말이다. '수사'에서 '조사'로 바로 단어를 정정하던 그 분은. 나중에 들어보니 군수사관 출신이었다. MD들의 부정을 어떻게 증명할꺼냐는 박주임의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그래요. 개인정보니까 우린 알 수 없죠. 그러니까, 우리는 본인이 까게 만든다는 거죠. 정황 증거를 다 모아서."
그리고, 몇달 뒤 나는 커머스본부장과 MD 몇명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 손해끼친 금액을 배상하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박주임에게 들은 건 또 몇주 뒤였다. 박주임은 몇명은 이에 불복해서 회사와 지금 소송중이라며 골치가 아프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또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