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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Jul 09. 2019

어느 월급 중독자의 반성문

이제 나를 개조합니다.

"당뇨증상이 있으신데요?, 젊은신 분이" 응급실 의사가 신기한 듯 말했다.  

"진짜요?" 와이프는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신기해했다.


'아, 일요일 밤에 이게 무슨 난리일까?' 응급실 천장을 보며, 나는 내일 출근을 걱정했다. 그랬다. 나는 그날 콜라 1. 5리터와 CU편의점 PB상품인 커피믹스 1.5리터, 3리터를 마셨다. 맞다. 팝콘과 콜라도 먹었다. 그게 먹은 게 다였다. 하루동안 먹을 걸 요약하면, 설탕. 설탕만 먹은 게 된다. 한꺼번에 마신것은 아니었다. 변명을 하자면, 중간중간에 갈증이 날 때마다 마셨다. 게임을 하면서, 목이 마르면 마셨던 거다. 먹는 건? 잊었다. 게임에 방해가 되니까...


와이프와 집에 있다가 갑자기 다리가 풀렸다.

아니 몸 전체에 힘이 빠졌다. 정신은 있었지만, 기운은 마치 공기 중으로 증발된 사람처럼, 유체이탈과 해탈의 기분을 느꼈다. 와이프가 눈이 풀린 나를 보고, 택시를 잡아 응급실로 데려갔다. 해마다 한 번은 오는,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의 응급실이었다. 작년 생일에 119를 타고 왔었지만, 이번은 택시를 타고 오다니,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걸까?


"일단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돌아가시고요.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아보세요."

의사 선생님이 피곤한 듯, 무심하게 말했다. 새벽 2시. 애매한 시간, 돌아가서 자야 하나, 깨어있어야 하나. 마치 교무실에 부모님과 함께 면담을 했던 고3 때의 뜻모를 난감함처럼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집에 등록금은 없으면서, 좋은 대학은 가야 한다는 아버지 옆의 내가 떠올랐다. 와이프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같이 한밤에 낭패를 입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을 가르며 서울을 달렸다.


'나는 왜 이렇게 까지 된 걸까?'  

택시창문을 열고 생각했다. 나는 어느 대기업에 다녔다. 매일이 치열한 회사, 주말에도 일하는 부지런한 회사였다. 내가 주주였다면 이보다 더 좋은 회사는 없겠지.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힘들었다.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핸드폰의 카톡방이 여러 개였다.주말에도 알람은 수시로 울렸다. 임원들은 주말에 매장들을 다니면서, 공격용 드론처럼 이런 저런 카톡을 떨어뜨렸다. 공대지 미사일같은 카톡이 떨어지면, 벽을 뚫고, 타깃에 명중한다. 팀장 방을 뚫고, 과장, 차장방을 지나, 대리, 사원 방까지 모두의 주말을 폭파시켜버렸다. 그날 오전은 그렇게 초토화된 내 주말을 보상받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게임을 찾고, 그 안에서 살았으니까.


일요일 사춘기의 나

와이프는 그렇게 불렀다. 일요일 오후 4시부터 사춘기 아이처럼 짜증을 내는 나. 학교 가기 싫어하는 학생처럼, 나는 회사가기를 싫어했다. 사춘기에는 숨쉬는 공기에도 짜증을 맨다며, 나도 그 나이 또래가 그렇듯, 불평과 짜증을 냈지만, 정작 공부을 안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정작 자기개발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난 대기업에 다니고 있으니까. 대신 게임을 찾었다. 게임을 하며, 지금 승리하고, 지는 것에 내 남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내가 내 손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작은 게임안의 나일뿐이었다는게, 그렇게 슬플 일이라는 건, 뒤늦게 안 채 말이다.

계속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던 나

나는 무엇인가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방치하고 있는 나의 삶에 대해, 소모되고 있던 내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화살에는 회사가 있었다. 회사 안에서는 모두 비슷했으니까,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그러니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변명을 나는 하고 있었다.나는 보통이라는 범주안에 있으며, 안주해도 된다는 변명을 성벽처럼 둘러대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는, 튀는 누군가이며,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며 혐오하고, 질투하고, 험담했다. 매일 1캔의 콜라가 2캔이 되고, 3캔이 되고, 내 몸에 설탕이 퍼진 날들처럼, 나는 그렇게 매달 월급에 중독이 돼서 그렇게 살았다.


달콤한 인생이 끝나다.

"그동안 먹고 싶은데로 사셨으니, 이제 먹기 싫은 것도 드셔야죠." 의사가 말했다. 지금의 설탕중독의 된 내 삶을 내 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는 선고. ‘약해 빠진 몸뚱이’, ‘불쌍한 몸뚱이’. 의사는 나와 와이프에게 이제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을 래퍼처럼 속사포로 쏟아냈다.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먹으면 안 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먹어라였다. 이런 거잖아요 라고 딱 자르고 싶었다. 먹는 것이 또다른 나의 삶의 일부분이라면,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뜻이다. 계기는 그렇게 찾아오는거다. 나는 그렇게 당뇨병 초기 환자가 되었고, 달콤한 인생도 그렇게 끝이 났지만, 우습게도 새로운 계기가 생겼다는 게 나는 좋았다.  


회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

되돌아보니 그랬다. 회사는 억울할 만했다. 나를 이렇게 몰아간 회사. 원래 회사는 그런 곳이니까 전혀 잘못이 없다. 그저 최소의 자원을 투자하여, 최대의 효과를 뽑아내려고 했던 거니까.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가려고, 자본주의 속의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 그저 생존하기 위해, 회사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을 했고, 나는 그런 회사와 계약을 하고, 대가를 월급으로 받았으니, 회사나 나나 서로 잘못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 회사가 안 맞는다면, 애초에 내가 계약을 맺지 말거나, 해약을 하면 될 일이었다.     


결국에는 내가 바뀌는 게 답.

병원에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서,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르지 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양복을 입은 회사원이 되고, 양복을 입은 회사원은, 어느새인가 자영업자가 된다. 그 삶의 다단계, 그 고리는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 끊어주지 않는다. 내가 그 고리를 끊지 않는한, 내가 바뀌지 않는한. 그 길은 계속된다. 그길로 돌아와 나는 게임을 끊었다. 콜라를 끊고, 술을 끊었다. 나의 삶을 내 온던한 두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정직하게. 솔직하게, 나는 아무것도 이루낸게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 누구, 어느 부서의 누구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직에 속한다는 것과 독립한다는 것

지금껏 그랬다. 어느 집, 누구의 아들이었으며, 어느 학교, 무슨 과의 속했던 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회사의 누구로 나는 존재했다. 항상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닌, 누군의 이름안에 그늘아래 있던 나, 나는 그런 맞추어진 삶을 살았다. 이것이 나의 삶인가? 다른 누구의 삶인가? 이름만 바꾸면, 다를 것이 없는 삶, 똑같이 찍어낸 삶을 나는 살아왔다. 답답했다. 세상도, 회사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그래서, 할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게임속의 내가 아닌, 현실의 나는 바꾸는 게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더이상 조직의 그늘 아래가 아닌 나 자신의 삶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로 했다. 모든 것을 나에게 집중하는 삶.


시작은 음식부터, 운동부터

의사가 추천해 준대로, 매일 채식을 먹었다. 영양을 위해

채소외에는 두부와 계란까지만 먹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수영으로 유산소 운동을, 헬스로 근육운동을 했다. 당장 바뀌는 것은 없지만, 조금씩 살이 빠지는지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작은 근육이 생겼다. 옷사이즈가 줄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내 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바뀌니, 그 몸은 내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들은 조금씩 내 생활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내가 변하면 내 삶도 조금씩 변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하나 둘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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