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로 지져야 합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살타는 냄새가 났다
그 해 겨울, 나는 코피가 계속 났다. 하루에도 2-3번 났다. 겨울이니까, 처음에는 콧물과 헷갈렸는데, 코피는 훨씬 즉각적이다. 콧물은 진득하지만, 코피는 수직강하의 느낌이다. '뭔가 흐른다' 이런 느낌인 거다. 일상생활 중에 코피가 나면 상당히 불쾌하기도 하고, 곤욕스럽다. 빨간색이니까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다. 자다가도 코에서 뭔가가 느껴지면 깨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근처 이비인후과에 같다. 매일 하는 전화영어의 주제는 코피가 됐다. 어제 코피가 났고, 이비인후과에 갔다고 영어로 버벅거리며 얘기했다. 회사 앞에 있는 **이비인후과. 빌딩 구석에 있는 이 이비인후과는 손님이 없었다. 간호사분의 깡마른 얼굴. 나보다 더 아프신 것 같은데. 대기도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이 90도로 인사를 했다. 매번 코를 진단할 때마다, 막대기를 소독했다. 그리고, 발로 연신 사진을 찍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동굴 같은 구멍. 어둠을 뚫고 가는 막대기. 코안에 굴곡이 있으며. 2-3개의 혈관이 문제가 있다 했다. '이 큰 촬영 기계는 리스려나?' 딴생각을 했다. 의사는 레이저로 지질 것을 권했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마자 캐비닛에서 바퀴 달린 발전기와 긴 막대기로 연결된 레이저 기계라 불리기에는 오래된 기계를 꺼내왔다. 눈을 감았지만, 살타는 냄새가 났다. 신음을 낼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이거였나, 살타는 냄새라는 게. 코를 레이저로 지지면, 코로 살타는 냄새가 난다. 왠지 재밌는 상황이었다.
술을 많이 먹으면 위가 역류하는 것처럼, 내 몸은 왜 그렇게 격하게 반응을 하고 있던 걸까? 피를 내뿜으면서. 돌아온 사무실은 조용했다. 리더였던 나, 조직을 추스르고, 팀을 리빌딩해야 하는 책임, 겉으로는 잘하고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밑에 12명이었다. 그 해 첫눈은 11월이 돼서야 왔고, 앞으로 눈이 많이 올 거라는 기상예보가 있던 더딘 겨울이었지만, 회사는 시시각각 변했다. 대표는 갑자기 바뀌었다. 전 대표는 작년 사업성과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했다. 새 대표가 왔고, 전 대표가 키워주었던 내 위의 상무는 바로 눈밖에 났다. 그리고, 감사가 시작됐다. 흉흉한 시간이었다. 수시로 메일이 전달됐다. 자료를 준비해서 보내면 전화가 오거나, 카톡이 왔다. 순서대로 불려 갔다. 5년간 자료를 요청받고, 부족하다면 추가 자료를 만들었다. 전달한 자료에서 누락된 결과보고서, 재고 자료가 요청됐다. 파일명은 최 최종 확인까지 늘어났다. 밤은 깊은데도, 자료는 찾을 수 없었고, 그만둔 사람에게는 연락은 할 수 없었다. 눈앞에 높은 벽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긴 하루하루가 흘렀다. 시간이 지나자, 몇 명이 집중적으로 불려 갔다. 회사 지하에 작은 방. 방음벽에, 투명 유리로 밖이 보인다고 하는, 영화에서 형사들이 들어갔다 나오는 방. 나에게도 전화가 오겠구나. 아내에게 현금 6만 원을 받아, 점심시간에 휴대용 녹음기를 샀다. 네이버에서 녹음, 녹취를 쳤다. 내가 대화를 하는 상황이면,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며, 법적 효력이 있다. 바지 뒷주머니에 녹음기를 구겨 넣었다. 다음날 전화기기 울렸다. 태연한 척하려 하려 해도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조용안 방안. 내 몸을 의지할 의자를 찾았지만, 의자 기둥이 카펫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기우뚱하자, 앞에 앉았던 3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바로 질문이 왔을 때 난 당황했고, 아차 그때 녹음기 버튼 키치 않은 게 생각났다. 아차 아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무 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문을 닫고 나왔다. 그날 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분해서였을까, 억울해서였을까, 후회가 돼서, 그 감정이 무엇일까 나도 정의할 수 없었다. 뒤척이다가 출근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코피가 시작됐다. 메일함에는 건강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주변의 누군가를 신고하라는 메일이 매일매일 쌓여왔다.
상무실은 어느새부터인가 불이 꺼져있었다. 평상 시라면 어린이날이라고 좋아했을 텐데. 3주로 접어든 감사는, 소소한 재미를 만들었다. 독사, 산적, 곰탱이, 감사팀은 그렇게 불였다. 회의실에 모여 감사팀에 줄여간 후기를 서로 공유했고, 누군가는 성대모사를 했다. 번지점프를 한 사람처럼, 서핑을 한 사람처럼, 웃고 떠들었다. 극한 위기 속에는 히어로가 나온다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정리의 기술을 발견한 직원이 나타났다. 평소 성실했던 직원은 의외의 빈틈이 발견되어 놀림을 받았다. 우리 중에 감사를 제일 오래 받은 직원은 일간, 주간 감사인상이라고 불렀다. 시상은 공짜 커피가 전부였지만, 난 그렇게라도 12명을 웃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감사를 계기로 사무실에 오래 있다 보니, 12명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던 직원은 본인이 미안하다며, 저녁 도시락을 사기도 했다. 그해 지각한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밤늦게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누군가 그랬다. "우리 나중에 이 겨울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감사의 마지막 주, 나는 호출을 받았다. 책임을 지라고 했다. 회사는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판촉물을 제작하고, 대리점이 제공했지만, 잔여 판촉물의 회수 내역이 없고, 누적 손실이 이 정도라고 했다. 90도로 인사하던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떠올랐다. "레이저로 지져야 합니다." 살타는 냄새가 다시 떠올랐다.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불 꺼진 상무실을 보았다. 임원들에게만 부여되는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회사는 나에게 지금까지 창문 하나 내어주지 않았구나. 클래식을 틀고, 이어폰을 꼈다. 나에겐 즐거웠고, 부끄러웠던 회사 생활. 이제 끝으로 가고 있는 건가. 팀이 만든 라디오 광고가 처음 라이브 되는 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기 위해 남아 있던 팀원에게, 난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작했는지, 수다가 이어졌고, 웃느라 녹음 포인트를 놓쳤다. 서로 짜증을 냈지만, 이런저런 농담만 하다 집에 가면서도 즐거웠다. 즐거웠던 일도 있었지만, 부끄러운 일도 많았다. 밑에 직원이 상품 포장을 잘못해서 고객 클레임이 왔고, CS팀장이 그를 데려가서 혼냈다. 나는 그것을 말리지 못했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 무책임한 리더였다. 그 후로 늘 그를 볼 때마다 내가 부끄러웠는데,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자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떨다가, 연수 버스를 놓칠 뻔하고, 불이 나게 뛰어갔던 그 날. 그날부터 시작됐던, 나의 회사생활은 그렇게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 해 지각했던 긴 겨울을 지나고, 무더위가 시작되던 여름까지 나는 회사를 다녔다. 부서 이동을 했고, 그럭저럭 다녔다. 회사는 성장했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쇠퇴했다고 자조했다. 어느 여름날, 그 이비인후과를 다시 방문했을 때, 손님은 늘어 있었고, 간호사의 얼굴에는 살이 올라있었다. 그리고, 나는 담담하게 사직원 제출을 클릭했다.
“이제 코피는 않나시죠?”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