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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Sep 19. 2020

퇴사 후, 홀로서기 그 이상과 현실

결국 사람은 더 겸손해야 하는 거였다.

치킨집이든, 스마트스토어이든
(출처-JTBC 뉴스룸)

퇴사 후, 아내는 돈에 대해 내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월 말 휴대폰에 찍힌 카드론 문자를 보며, 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때, 시작한 건 블로그와 스마트스토어. 블로그는 하던 일이 디지털마케팅이었던지라, 일간 1,000명 이상이 방문하는 인기 블로그를 만들었지만, 큰돈이 되지 못했다. 때마침, 직장인 부업 열풍으로 스마트스토어 유행이었다. 만들기만 하면 마치 월 백만 원은 기본, 조금 욕심을 내면 월 3백만 원도 너끈히 벌 수 있을 것만 같던 시기, 그때 쏟아지던 유튜브 콘텐츠들 속에 나도 휩쓸렸다. 직장 그만두면, 결국 치킨집인 것처럼, 요즘은 결국 스마트스토어더란 우스개도 이해가 되었다.


팔 줄 모르는 사람
(출처-tvN 미생)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팔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10년 넘게 대기업 마케터로 일했지만, 직접 판 건 아니었으므로 내가 직접 판 경험은 전무했다. 노동시간, 그것 말고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판 적이 없었던 사람이 나였다. 스마트스토어는 시작과 함께 꽤 오랜 시간 매출은 0원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씩씩하게 망한 셈이었다. 뼈저린 현실인식, 자가 반성의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무도 채용하지 않은 1인 기업이라는 점이고, 임대료 없는 그저 온라인스토어였을 뿐이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포기하려고 하는 찰나, 운명의 장난인 듯, 한 개, 두 개 주문이 들어오고, 결국 팔리기 시작했다. 한두 개는 곧 다섯 개로, 열개로 주문은 몰리기 시작했다.   


24시간이 모자라
(출처-TV조선)

그때는 아침에 일어나 밤사이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포장을 해서 택배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새벽에 오는 주문 문자에, 내일 물량을 덜어보고자 야간에도 포장을 했다. 결국 '주문 좀 그만 오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누운 다음에는 매월 사업이 커진다는 전제로, 뭉게뭉게 몽상을 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임대, 직원 채용, 사업 법인화, 기업 피인수 등,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꿈을 꾸다 잠이 들었다. 매일 꽤 큰돈이 들어왔고, 또 꽤 큰돈이 빠져나갔다. 처음에는 계산기를 두드리다, 그것도 잊고, 하루를 보냈다. 사고, 팔고, 포장, 하루하루가 그렇게 가다 보니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가' 싶었다.


너무 잘 나간다 싶었지.
(출처-이말년, 인터넷커뮤니티)

어느 날, 갑자기 상품 소싱이 중단되었다. 공급처의 재고가 바닥이 난 것이다. 급하게 다른 소싱처를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판매 중단이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이드 위반으로 상품 노출이 잠시 중단되었다, 노출이 정상화된 뒤에도,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 '너무 잘 나간다 싶었다.' 회사원 시절, 체감하지 못했던 급변하는 경영환경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몸소 체감했다. 오늘 매출이 나오는 것이, 내일은 또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던 거였다. 하루, 아니 몇 시간 뒤에 경쟁상품이 더 싼 가격에 올라왔다. 이 곳이 정글 아니 세렝케티의 야생이었구나. 이제 알게 되었다.



 더닝 크루거(Dunning-Kruger effect) 효과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찰스 다윈

코넬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대학원 저스틴 크루거는 코넬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체스, 문법 지식 등을 테스트하며, 특정 패턴을 주목하게 된다. 조금 아는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많이 아는 학생들은 오히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더닝과 크루거는 이를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사라진 나의 전자책 프로젝트

부끄럽게도 한때 나도 그랬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책을 쓰려고 생각 했으니 말이다. 나를 온라인 마켓으로 이끈 건 수많은 유튜버들과 그들의 컨텐츠였다. 퇴근하면, 새벽까지 보고 또 보았다. 회사원의 잊었던 꿈, 사라졌던 용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직접 뛰어들어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유튜브 안의 그 수많은 성공담들 중 일부는, 더닝 크루거 곡선이 좌측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 밖에 몰랐던 그들이지만, 그 성공을 과대평가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저 그건 어제의 성공담이었고, 또는 행운(Luck)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 안에는 정말 보석같은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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