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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메흐메트II세 Mar 03. 2021

인영천축국전_#2

Day 2. 오 나의 여신 '마야'

 10분씩 쪽잠으로 밤을 새운다. 공항 의자에서 편하게 잠이 올 리가 없다. 새벽 3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체크인을 한다. 새벽이라 사람도 없고 공항 검색대도 가볍게 통과한다. 비행기를 탈 게이트 앞에서 공항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다시 한번 게이트를 확인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게이트 옆에 여행객의 피로를 잠시 달래줄 1인용 침대형 의자가 있다. ‘잠시 저기에 누워있자!’ 게이트가 코 앞이고 시간 여유도 넘친다. 너무 피곤했던 터라 다시 10분씩 쪽잠에 빠진다. 자다 깨다 서너 번 반복하다가 5시 45분에 벌떡 잠에서 깬다. 큰일이다! 내 비행기는 5시 55분! 게이트로 달려가 티켓을 보여준다. ‘뭐라고? 다른 게이트로 가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분명 티켓을 보여주고 게이트 확인까지 하지 않았는가? 따질 틈이 없다. 안내해준 게이트로 뛰어간다. 티켓을 보여준다. ‘뭐라고? 뭐?? 뭐라고??? 비행기가 떠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진다.)

안락한 침대형 의자와 문제의 33번 게이트 앞에서...


 ‘분명 방법이 있겠지… 다음 비행기가 있겠지… 자리가 있겠지… 이들이 해결해 주겠지… 일단 앉아 있으라고? 그래, 말을 잘 들어야 잘 해결해 주겠지. 따라오라고? 어디로? 내 비행기는? 다른 방법은? 카운터로 가서 항공사 직원과 얘기하라고? 그들이 해결해 줄까?’


 게이트에서 출구로 나오는 것은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직원을 따라가 서류에 서명하고 나갈 수 있었다. 난 인도에서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정신이 멍해지는 패닉 상태를 경험했다. 공항에서 내 비행기 항공사를 찾았다. 항공사 직원 왈, ‘네 비행기표는 취소되었고, 내일 비행기는 만석이며, 다른 항공사를 알아봐야 할거 같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다른 비행기표를 알아봤으나, 역시 마찬가지로 표는 없다. 옆에 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나 같은 바보가 태국에도 있다니…

방법을 찾자!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정한 척을 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안 되는 영어로 물어본다. ‘다른 방법이 있느냐? 당신이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최대한 가까운 다른 도시로 비행기로 이동 후 기차는? 버스는? 빌어먹을 ‘레’에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냐 말이다.’ 대답은 No였다…


 이 사단을 내었는데 아직도 시간은 아침 8시도 안되었다. ‘안돼. 정신을 차리자. 진정하자. 방법을 찾자.’ 공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빌어먹을 인디아!! 날 이 수렁에 몰아넣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저자 류시화에게 욕을 한 사발 퍼 먹인다. 우선, 인터넷이 필요하다.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가자. 서울은 서울역, 델리는 뉴델리역이겠지? 뉴델리역으로 가자.’ 참고로 인도는 지하철을 탈 때도 엑스레이 검사를 한다. 공항 검색대와 똑같다. 파키스탄과 분쟁 중이어서 지하철 테러를 막기 위함 같다. 하지만 이런 안정장치도 패닉에 빠진 한국인에겐 또 다른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지하철 검색대를 통과한 후 마음이 급한 나머지 막 도착한 지하철에 몸을 던지며, 타고 있는 승객에게 물었다. “New Delhi? New Delhi?” 그런데 이게 뭔가. 이 버르장머리 없는 인도인은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마치 ‘어? 이 외국인아, 이건 글쎄? 이 열차는 뉴델리를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고, 모르겠는데?’라는 제스처를 취하는게 아닌가. 열 받는다. 매너 없는 인도인. 다행히 옆에 있는 다른 인도인이 “Yes, Yes”를 외쳐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지만, 난 외국인이 아닌가, 여기선 절대적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분하지만 참자.


여담으로, 이 일이 있고 며칠 뒤 인도에 오기 전 여자친구가 알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도는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는게 Yes라는 뜻이에요, 웃기죠? 호호호’


뉴델리역 도착. 여기서 위의 <뉴델리 만들기> 레시피로 만든 뉴델리를 꺼내면 된다. 일요일 아침 9시의 뉴델리. 아무것도 없다. 아니, USIM 카드를 파는 핸드폰 가게가 없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점처럼 생긴 게 없다.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는 아침 10시~11시에 상점 문을 연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버스들이 델리역 앞에 줄지어 서있다. 바닥엔 거지인지 일반인인지 누워서 자고 있다. 개는 자동차 위에 누워 자고 있다. 릭샤(자전거) 운전기사는 릭샤 위에서 자고 있다. 길바닥엔 쓰레기와 오물로 너무 더럽다. 오줌과 똥 냄새가 난다. 휠체어 같이 생긴 의자에 앉은 거지는… 아니… 이 거지는 바지를 안 입고 앉아 있다… 아…… 패닉이다! 패닉! 사람 살려!!!


 어제 ‘찬드니 초크’처럼 뉴델리역을 기준으로 근처를 돌아다닌다. 어제부터 잠을 못 잔 터라 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날씨는 덥고, 정신은 혼미하다. 하지만 난 반드시 인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모세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 낡은 건물들은 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고, 마치 전쟁이 끝난 도시를 연상시키는 이 풍경에 외국인은 나 혼자다. 뉴델리를 기착지로 활용할 계획이었는지 라, 델리의 정보 따위는 없다. 인도인에게 섣불리 정보를 물었다가는 이 ‘건장한 아시안 몽키’를 아무도 모르는 어떤 곳으로 팔아넘길 것만 같다. '평범한' 인도 시민들이 사는 델리에서 난 너무 무서웠다.


 번화가처럼 보이는 길의 끝까지 갔으나, 문을 연 상점은 없다. 당시엔 신이 버린 도시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일요일 아침 9시였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델리역으로 돌아온다. 패닉! 어떻게 하지? 인터넷도 안되고,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나의 불안함을 노출시켜서도 안되고, 그렇게 델리 지하철역에 주저앉아 챙겨간 인도 가이드북을 뒤졌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한참을 주저앉아 있던 그때, 눈앞에 배낭을 멘 백인여자가 지나간다. “God! Excuse Me?! 캔 유 헬프 미?”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그녀의 ‘혹’이 되어 그녀를 따라가기로 한다. ‘어디로 가니? 어디라고? 모르겠는데, 돈 줄게 지하철 표 좀 사 줘. 나, 너 따라 갈게. 땡큐, 땡큐!’... 표정이 밝았을 리가 없다. 그렇게 난 그녀가 묵을 호스텔까지 따라갔다.


그 여신의 이름은 ‘마야’였다. “땡큐, 마야!”

오, 나의 여신 ‘마야’와 친절한 호스텔 주인 ‘바두’, 가운데가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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