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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May 19. 2020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에요

영화 여인의 향기 中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에요!

영혼 없는 위안의 말 같으면서도 들을 때마다 뭔가 덜컹하는 느낌이 한구석을 훑고 지나간다.

탱고가 정말 그런 춤이야?

아무리 춤알못인 필자라지만 저 즉흥성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을지...

그러면서도 탱고가 제시하는 색다른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꼬이면 꼬이는 대로 파트너의 흐름에 따라 함께 미끄러지면 그 뿐인 춤 탱고.  

약속된 동작도 각본도 없는 춤사위에는 현장의 생생한 그루브와 파트너에 대한 한없는 받아들임이 있을 뿐이다.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앞발축을 꿈틀이게 만드는

‘Por Una Cabeza’의 선율이 허공을 맴도는 듯하다.

  

알 파치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여인의 향기’

영화는 이보다 더 엉킬 수 있을까 싶은 퇴역 장교의 삶을 통해 탱고가 주는 의미를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불명예제대도 모자라 스스로는 장님이 됐고 말도 안 되는 객기로 인해 사람들을 다치게 만든 알 파치노.

그런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가 비밀리에 준비해온 뉴욕 여행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고등학생 찰리(크리스 오도넬)다. 그렇게 두 사람의 뉴욕 여행은 시작하게 된다. 슬레이드의 꼬인 스텝에 찰리가 얼떨결에 휩쓸리게 된 것처럼.

오래도록 뉴욕 여행을 준비해온 프랭크는 마지막을 앞둔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순간순간의 그루브에 인생을 건다. 앞이 보이지 않는 프랭크가 페라리를 모는 장면 그리고 우연히 만난 미모의 여인 도나(가브리엘 앤워)에게 다가가 탱고를 추자고 제안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찰리는 그런 프랭크를 의아하게 때로는 무모한 듯 바라본다. 나였더라도 찰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 잃을 게 없는 인생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조심스러운 나의 이 태도. 이마저도 잃으면 안 되다는 몸짓인 것인지.

 

그랬던 찰리가 영화 마지막 장면(누명을 쓴 찰리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학교 전원 회의)에서는 그간 보지 못했던 프랭크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된다. 이름 모를 여인에게서 프랭크가 향기를 느꼈듯 찰리 역시 프랭크의 삶에 대한 태도를 통해 진한 향기를 느낀다.

‘용기 물러서지 않는 의지’   

두 사람은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각본 없는 탱고를 추며 서로를 위해 스텝을 맞춘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자 덤덤히 이별한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나의 파트너는 누구일까?

어쩌면 현재의 나와 한 템포 느리게 스텝을 밟고 있는 ‘과거의 나’인지 모르겠다.

파트너의 스텝을 맞춰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현재의 나’

가끔 벌렁 자빠질 만큼 변화무쌍한 스텝으로 놀래 켜고는 했던 어제의 나.

그런 파트너가 미웠던 현재의 나

오늘의 나는 내일을 위해 또 얼마나 조심스레 스텝을 밟고 있는가.


때로 스텝이 엉키면 어때서...

하는 마음으로 프랭크의 대사를 읊어 본다.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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