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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Jun 06. 2018

재미와 성과의 교집합을 찾아서

그리고 오직 재미를 위해서. 웹툰 <전자오락수호대>

-1. 이거 재미있는 거 맞아?

재미있는 일 하면서 살겠다고 호기롭게 에디터 일을 시작했지만, 아침 알람소리까지 기분좋게 만드는 회사가 있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 궁금한 걸 묻고 이야기를 듣는 일은 물론 즐겁지만, 그 외에 잡다한 일이 많아지거나 인터뷰이 선정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가끔 놔버리고 싶을 때도(가끔보다 좀 더 자주) 있다. 이 정도에서 끝나면 그나마 낫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단순히 재미있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에 기여해야 한다는 눈으로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는 것이다.


일단 딱딱한 문체부터 바꿔야 할 것 같고, 대중성 떨어지게 지루한 부분은 쳐내야 되고, 상품소개도 중간중간 넣어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구성을 바꿔는 게 답이고, 그게 잘 안될 때에는 '나는 뭐하는 인간인가' 자책하게 된다. 모노클의 브랜디드 콘텐츠나 페이스북의 미디어 커머스를 참고해봐도 결국 우리 사정에 맞는 정답은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콘텐츠 마케팅은 아직 클래식이라고 할 만큼 시간이 쌓이지 않은 분야다.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조차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머리를 싸매서 만든 프레임워크도 가설에 불과하다.


재미와 성과의 교집합은 어디있을까


이런 막연한 상황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할까. 나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주간이었다. 이럴 땐 일부러라도 '목적없는 즐거움' 타임을 보내야 한다. 재미만을 좇아간 길 끝에서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더 멀리 가보자.


(나도 안다. 사실은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는 걸.)



1. Misson Complete! vs. Nice Play!

<전자오락 수호대>의 주인공은 흥미롭게도 게임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을 지탱하는 스탭이다. 게임을 원활하게 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주인공 레벨에 맞는 몹을 배치해야 하고, 상점에는 포션과 무기를 채워넣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그 누군가에게도 삶이 있다. 게임이 플레이되는 동안에는 서로를 끝장낼듯이 싸우던 캐릭터들도 주인공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함께 치맥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동료다.

이 바닥도 처참하긴 매한가지다


물론 전자오락 수호대의 모든 초점은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다. 아무리 똑똑해도 멍청한 역할을 맡았으면 침을 흘리머 웃어야 한다. 주인공과 같이 놀고 싶어도 대결을 해야 한다. 게임 마을에 찾아오는 주인공은 매번 다르지만 '나'의 대사와 행동은 매뉴얼대로 진행될 뿐이다.



'나'는 배역에 불만을 가지다가도, 서서히 몰입한다. 어차피 게임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네가 몬스터 역할을 맡은 것도 애초에 네가 괴물이기 때문이다. 게임세계의 질서가 너와 나를 규정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다.


일 못하는 동료를 속으로 무시했던 못난 마음이 떠올랐다. 조직 안에서 열심히 해봤자 바뀌지 않는다며 합리화했던 기억도 분명 내 것이다.


이렇게 게임세계 전체가 학습된 무기력으로 굴러가는 시점에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대결이 아니라 놀이를 원한다. 더 강한 무기를 사서 강해지는 것보다 플레이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는 보기 드문 유형이다.


노느라 게임 진행이 안 되지만 주인공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


전에 없던 주인공의 등장에 수호대는 당황한다. 싸워서 쓰러뜨려야 할 들개 몹에게 힐링포션을 주고, 아무런 보상도 없는 곳에 가서 칠렐레팔렐레 놀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흑룡 좀 부활하면 안돼?


마을을 처부순 흑룡을 무찔러야 한다는 미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리어 흑룡에게 왜 그랬는지 물어봤냐고 되받아치는 순수함에 미션 전달자는 개빡친당황한다. 역할극으로 움직이던 게임세계에 균열이 생겼으니까. 용사는 게임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재미와 동료의식이라는 자신만의 가치를 따라 움직인다.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햐 할 때는 효율과 위계질서가 내면화되기 쉽다. 하지만 재미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다. 재미를 진지하게 탐구한 서적 <재미의 본질>에서는 '특정한 목표를 지니지 않고 외부자극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재미의 전제조건임을 반복해서 주장한다.

'하고 싶다'는 욕망에는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없다. 이때부터 게임의 축은 마왕 무찌르기에서 플레이 자체가 주는 재미로 이동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퀘스트 통과열쇠는 게임을 가장 사랑하는 플레이어에게 돌아간다.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보고, 괜히 숲속 구석까지 가보고, 가장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순수하게 게임을 즐긴 플레이어에게는 Mission Complete 보다 Nice Play! 가 더 어울리는 칭찬이다.



2. 재미가 밥먹여주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재미를 좇으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음.. 이런 뜬구름잡는 자기최면은 금세 휘발된다.


난 아직도 재미있는 일과 조직 안에서 필요한 일의 교집합을 찾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다행히 나의 재미에 비즈니스적 가치도 있다고 믿는 리더를 만났을뿐. 여전히 재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내가 이러려고 시작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일종의 게임이라면, 미션에 실패한 기분도 든다. 그리고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릴 때마다 시험에 든다. 반차쓸까 동전을 넣고 게임을 이어갈 건지, 카운트다운이 끝나도록 내버려 두고 다른 게임을 찾을 건지 말이다.



다행히 아직 주머니에 동전 10개 정도는 있다.
동전 떨어질 때까지는 도전해 볼 생각이다.
이대로 집에 가면 잘 때 억울하니까.



새로운 플레이어를 만나 두근거림이 있는 --> 웹툰 <전자오락 수호대>




0. 이스터에그

"멜론이 음악 스트리밍 시장 생태계를 망쳐놨다"라고 하면 보통 멜론을 욕하겠지만 나는 '생태계'라는 단어에 주목하는 편이다. 왜 하필  \생태계라는 단어를 썼을까. 그만큼 진화론의 개념이 사람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낯선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익숙한 대상을 끌어와 '이거랑 똑같애.'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편하다. 익숙하다는 건 안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걸 비유라고 부른다. 특히나 불특정다수가 보는 기사에서는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대중에게 익숙한 세계관을 가져온다. 말 잘하는 사람이 대개 음식이나 연애로 비유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바꿔말하면, 비유에 동원되는 세계관을 잘 들여다보면 내가 속한 곳의 시대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씬에서 최근 몇년간 꾸준히 눈에 띈 단어는 플레이어player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은 각각 시장이라는 게임 스테이지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플레이어가 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Google's mission is

"to organize world's information and 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 and useful"


구글은 미션 난이도를 아주 높게 설정해서 '이번 생에는 달성할 수 없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번 생에서 끝판왕을 보기 힘든 미션이지만,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신난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글로벌 테크 기업이 정말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등장했다. 페이스북의 가짜 뉴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논의는 더 나아가 기업이 자의적으로 설정, 해석하는 미션이 달성됐을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도 다뤄지고 있다. 페이스북  부사장이 남긴 메모는 우리 시대의 아젠다를 상징한다.


이 의미심장한 게임 속에서 나는 선택해야 한다.  어떤 미션을 가지고 평생을 일 할지, 또 어떤 플레이어인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조금 기대되고 또 많이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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