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겜피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성훈 May 08. 2021

수명을 10년 늘려준 게임

게임이 현실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1. 32살의 게임 디자이너 제인 맥고니걸은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장식장 문에 머리를 부딪혔다. 순간의 실수로 뇌진탕에 걸렸다. 친구와의 평범한 대화 중에도 횡설수설했고, 글을 조금만 읽어도 눈앞이 흐려졌다. 의사의 처방은 가혹했다. 커피 금지, 게임 금지. 심지어 언제 호전될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머리에 안개가 낀 상태로 1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

다. ⁣

2. 한창 일해야 할 시기를 텅 빈 머리로 흘려버리라니. ‘자살하거나 이걸 게임으로 만들거나 둘 중 하나야.’ 제인은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죽을 병은 아니었지만, 뇌진탕에는 보통 우울과 불안이 뒤따른다. 비관적인 생각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으로 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이야말로 낙관을 설계하는 매체니까.⁣

3. 이때 게임은 온라인 게임이 아닌, 제인 맥고니걸의 연구 분야인 ‘대체 현실 게임(ARG)’이다. 대체 현실 게임의 구조는 증강현실(AR)과 비슷하다. 현실에 가상의 무언가를 추가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증강현실이 주로 이미지를 덧씌운다면 대체 현실 게임은 미션과 규칙, 긍정적 피드백을 덧입힌다.⁣

4. 문제는, 제인이 건강 관리 게임을 한 번도 만들어본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2009년 당시 대체 현실 게임은 초기 단계였고, 그는 지금이 자신의 연구를 시험해볼 기회라고 판단했다. 불안과 걱정이 누그러지고 고양감이 들기 시작했다. 게임의 틀을 만들기 위해 뇌진탕 관련 의학 학술지를 두루 살폈고,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정의했다. ⁣

5. 그리고 다음과 같은 미션을 만들어 자신에게 적용했다.⁣

1) 비밀 신분 설정: 빨간머리 앤, 닌자, 해리포터 누구든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캐릭터 고르기⁣
2) 동료 모으기: 이렇게 거대한 적을 혼자 무찌를 순 없다⁣
3) 빌런 찾기: 병의 호전을 막는 행동의 목록 적기⁣
4) 능력 강화제 먹기: 하루를 기분 좋게 하는 행동 모으기⁣
5) 영웅이 할 일 만들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활동하기⁣

6. 가장 중요한 건 첫 단계다. 자신을 무능력자나 환자가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정의함으로써 스스로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기약 없이 회복을 기다리는 사람과 자기통제감을 가진 사람은 전혀 다른 존재다. 제인은 자신을 뱀파이어 퇴치사로 정했다(취향 확실한 미국인…).⁣

7. 다음으로 동료를 찾는 일은 주변에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공유하고, 적절한 도움을 얻기 위한 미션이다. 뇌진탕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정확히 어떤 고통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제인은 자신의 여동생을 동료 삼아 ‘와처’로 정해, 자신을 위해 매일 점수 매기기와 재미있는 기사 읽어주기를 요청했다. 다른 친구들에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기운 북돋아주기와 같은 미션을 배정했다(이쯤에서 제인이 긍정과 외향성의 도시 캘리포니아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8. 그리고 세 번째인 빌런 찾기는 자신을 무력화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무력화하는 작업이다. 목록을 적어두고 정복할 때마다 하나씩 지워가면 더 직접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보충자료는 12번으로).⁣

9. 일련의 과정이 즉각적인 효과를 불러오진 않았다. 하지만 제인의 긍정적인 의욕은 매일 샘솟았으며, 2주가 지나자 증상의 80%를 회복했다. 남편과 친구에게 더 깊은 이해와 조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10. 물론 이 경험담이 <슈퍼베터>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은 아니다. 현대 의학을 대체할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모든 대체 현실 게임이 그러하듯 새로운 접근법으로 문제를 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성취하고, 타인에게 도움받으며 성장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11. 현실은 쉽게 진척도를 알려주지 않는다.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확신보다 통제감과 낙관이다. 대체 현실 게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의 10년 전 TED 강연을 찾아보거나, <누구나 게임을 한다(원제: Reality Is Broken)>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은 타입이라면, 시야를 넓혀 게임이 가진 가능성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면, 프로필 링크에서 ‘게이미피케이션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방법도 있다. ⁣

12. 게임을 그만두고 현실에 살라고 하는 어른이 아니라, 현실을 게임처럼 만드는 법에 대해 아는 어른이 되고싶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가장 대중적인 콘텐츠는 게임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