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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eoul in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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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Feb 28. 2024

자리

나이에 맞는 자리라는 게 있는 걸까...

20대엔 취업을 해야 하고, 30대면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야 하고, 40대가 되면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기반을 다져야 하며, 50대가 되면 어느 분야에서든 중역 또는 대표의 위치를 점해야 하는... 마치 우리 사회가 지정해 준 것 같은 자리라는 게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그런 거 다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는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 데 있다. 저 당연한 위치에 있지 않은 날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과, 이젠 좀 기존 체계에 맞춰 살아야 하지 않냐는 조언을 거절하면 마치 자신의 성의를 무시한 것처럼 여기는 반응들에 당혹스러워지곤 한다.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에 들어오길 거부하면 기다렸다는 듯 낙오자 혹은 부적응자라는 범주로 몰아넣어버리는 사람들과의 공존법을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어쩌면 20~30대에 고민해야 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천착하게 된 것도 조금은 서글퍼지지만... 결국 사는 게 그런 것 같다. 미뤄뒀던 숙제를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것. 마주치기 싫어서, 감내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유예해 온 주제들과 결국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며 그것을 풀어내야 하더라. 마치 어린 시절 방학 내내 미뤄왔던 탐구생활 채우기와 일기쓰기를 개학 하루 전날 울면서 해야 했던 것처럼.(요즘은 방학 숙제라는 게 없다지...) 해야 할 숙제를 계속해서 피해왔던 나는, 40대 중반의 주름진 얼굴을 더 구기면서 꾸역꾸역 감내하는 중이다. 뭔가를 미루는 버릇이 이렇게나 안 좋은 거다.


이런 고민들이 비록 날 조금은 괴롭게도 하지만, 그나마 얻은 게 있다면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사는 게 정말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미운 사람을 끌어안고 살자는 성인의 경지에 다다랐다는아니다. 다만, 이제 그런 사람들을 내 생활 반경에서 지우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연습을 해볼 참이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내 마음속 평온함이 깨지는 것도 싫고, 그들을 욕하는 내 입 때문에 듣는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것도 못할 짓이니까. 물론 이러면 술자리 뒷담화의 쾌감이나, 남을 욕하며 동료들과 얻는 동질감 같은 소소한 재미들은 줄어들겠지만... 그런 걸로 쾌감을 느끼는 게 멋쩍어지는 나이가 되긴 했다.


40대는 정말 사춘기만큼이나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찬 시기가 아닐까. 처음 겪어보는 중년이라는 시기를 온갖 생각과 함께 꾸역꾸역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어딘가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내 모습이 살짝 안쓰럽기도 하다만 뭐 어쩌겠나. 이게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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