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eoul in mono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dioholic Mar 06. 2024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기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을 읽으며...

표지사진은 내가 한창 사진에 빠져 돌아다니던 시기에 아현동 재개발 구역에서 찍은 장면이다.(지금 그곳은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 정도가 되었다...) 온통 폐허가 되어 있던 그곳에서 묵묵히 짐수레를 끌고 가시던 어떤 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와 조용히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찍었을 때만 해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라져 가는 옛 동네' 와 같은 다소 거창한 생각을 했다면, 약 6년이 지난 지금 이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일' 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일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타자를 위해 쓰고 타자에게 공헌한다. 타자에게 공헌하면 공헌감을 느끼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기시미 이치로,「일과 인생」中)


노동의 대가로 나와 나의 가족이 곤궁함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을 이야기함은, 백사장 위에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우니까. 다만 이런 이유만으로 일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남을 등쳐먹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이들 역시 자신들의 일을 그렇게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정말 쉬운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지 밥벌이라는 생계수단을 넘어,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껴진다면 노동은 마냥 고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이 피하기 급급한 오물을 치우기 위해 새벽부터 땀 흘려 일하는 환경미화원분들이나, 가족조차 돌보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온갖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 복지사분들이 상당한 노동강도를 감내하는 것도 기시미 이치로가 책에서 말하는 그 공헌감 때문이 아닐까. 나의 일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그 마음으로 기꺼이 힘든 일을 감내하게 만드는 것.



일이란 삶을 영위하는 행위 중 하나다. 몇 번이나 살펴보았지만, 일하는 것도 삶을 영위하는 행위 중 하나이므로 과도한 부담을 느끼거나 자기답게 살기 어렵다면 그 일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기시미 이치로,「일과 인생」中)


하루에 8시간 넘게 생활하는 직장에서 공허함과 모욕을 견뎌가며 회사의 부품으로써만 기능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일이 누군가를 이롭게 하고 그로 인해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인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노동은 다소 힘들긴 해도 그렇게 끔찍하고 피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회사생활은 그 자긍심이나 공헌감이 들어설 자리를 남과의 경쟁과 남으로부터의 인정욕구가 채워버린 탓에 다 같이 지치고 괴로워지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도 물어본다. 나의 노동은 어떤 가치를 가진 것인지.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정말 도움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를 갉아먹는 고통의 과정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일" (2018, 아현동)


매거진의 이전글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