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TV 앞에 앉아 기타 연습을 하는 시간이 나에겐 하루를 마무리하는 힐링의 시간이다. 물론 나의 연습을 빙자한 소음에 와이프는 꽤나 괴로웠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소파에 나란히 앉아 레슨에서 배운 곡이나 내가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곡을 연주하고 와이프한테 리뷰를 받는 재미도 은근 쏠쏠했다. 아파트에 사는지라 스트로크는 엄두를 못 내지만, 조심조심 아르페지오와 핑거링으로 한곡 한곡 연습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다보면 하루동안 있었던 언짢은 감정들이 어느샌가 증발해버리곤 한다. 음악과 악기가 사람에게 주는 치유의 효과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기타를 잡고 소파에 앉으면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특별히 회사 업무가 과중해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심경의 변화도 없는데 말이다. 레슨의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연습할 내용도 많아지고, 조금씩 눈이 높아지면서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이상하게도 기타를 잡으면 몸이 늘어지며 눈이 감겼다.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무기력한 감정이 몸과 마음을 잠식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기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조금씩 서글퍼졌다. 하루가 너무 찜찜하게 마무리되는 기분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난 그냥 취미로 기타를 즐기는 아저씨인데 자꾸 스스로에게 많은 과제를 부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레슨 초기엔 그저 한 곡을 완곡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하고 싶고 해야 할 미션들이 점점 늘어났다. 스케일도 빨리 익히고 싶고, 아무리 해도 능숙해지지 않는 커팅 연습도 더 해야 하고, 얼마 전 배운 곡에 쓰인 연주 기법도 더 연습해야 하고, 연습한 곡들을 영상으로도 남겨놓고 싶은데... 이런 것들이 쌓여 스스로에게 과부하를 걸어버린 것일까. 그래서 기타를 잡는 순간 피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분야든 해야 할 숙제들이 많아지면 하기 싫어지는 법이니까.
무언가에 몰입하면서 내가 나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건 분명 나 자신을 분발하게 만들고, 미션 완성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느 순간부터 즐거웠던 어떤 것을 기피하게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주객전도가 아닐까. 즐기자고 시작한 것이 자꾸 부담과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음을 알면서도, 미련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슬럼프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더 지치고 우울해지기 전에 좀 내려놓고 쉬어 가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당분간은 살짝 쉬어 가야겠다. 기타가 싫어지는 시기가 오면 검도 수련의 비중을 높이면 되고, 그러다 검도에 지치면 다시 기타 연습의 텐션을 높이면 되니까. 마침 요즘 도장에서 같이 연습하는 사범님들과 검도 기술 연습에 재미를 붙이는 와중이니 타이밍도 딱 좋다. 그러다 죽도 쥐는 게 싫어지면 기타를 잡으면 되지 않겠나. 여러 관심사를 낚싯대 늘어놓듯 드리워두고, 그중 하나에서 튀어나오는 재미를 낚으면서 사는 것도 좋은 인생 같다. 그러니 지금의 슬럼프를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잠시 쉬어가자고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나에게 쓰는 편지처럼 써본 글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른하게 있고 싶을 땐 이 노래 만한 것도 없으니... 오늘은 이 곡과 함께 좀 쉬어야지.
https://youtu.be/jny6R1_PpUU?si=ZXZueISjL5F58J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