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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Dec 13. 2024

또 한 명의 DJ가 떠나간다

모든 이별은 슬프다지만...

라디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애청하는 프로그램의 DJ가 하차하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연과 음악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기에 감히 '가족'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인 라디오에서, DJ가 떠난다는 것은 사실상 일상을 공유하던 유사 가족을 잃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휴가차 온 베트남에서 조식을 먹고 방에 들어와 여느 때처럼 라디오 어플을 켜자마자 들려온, 무려 10년을 넘게 들어온 라디오 방송 DJ의 하차 소식에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정지영 DJ, 왜 이래요ㅠ


오랜 시간 나의 하루와 함께 해주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들이 자꾸 떠나간다. 물론 어떤 자리이든 언젠가는 물러남과 다시 채움이 있는 것이 순리지만, 아직 갈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떠나는 이들을 볼 때의 허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기성세대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어쩌겠는가, 그 익숙함이란 것이 주는 포근함에 물들어 버린 것을. 그런 포근한 일상이 깨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꾸 마음이 공허해진다.


매일 아침 내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던 두 DJ가 떠났고, 떠난다. 오늘 하차를 통보한 정지영 DJ와는 'Sweet music box'에 이은 두 번째 헤어짐인 셈이라 마음이 더 짠하다. 이제 다시 그 목소리를 들을 일이 있을까. 사실 작년 신지혜 DJ가 신영음에서 하차한 후, 남아있는 정지영 DJ의 존재가 고마워 부디 그녀는 오래도록 라디오 부스에 남아 있길 바라는, 일종의 예찬의 글을 쓰려했는데 이젠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잘가요 지디. 덕분에 참 따뜻한 아침이었네요




모든 헤어짐과 이별은 슬프지만, 나와 일면식도 없는 DJ와의 이별은 왠지 모르게 더 야속하고 서글프다. 이젠 누구의 목소리에 기대어 내 아침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걸까. 정지영 DJ에 대한 내 고별인사는... 작년 가을 신지혜 씨가 25년간 진행하던 신영음에서 하차했을 때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로 갈음하려 한다. 보내는 심정이 비슷해서 그렇다. 그저 청취자의 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같은 아침을 공유하던 심정적 가족으로서... 어디서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남은 방송 잘 듣겠습니다.


'신지혜의 영화음악'이 끝났다. 라디오 PD를 준비한다고 까불 때부터 들었으니 약 19년을 들어온 프로그램이다. 신영음이 선정한 영화음악 100곡을 CD로 만들어 듣기도 했고, 마음 둘 곳 없던 백수시절엔 아예 아침 11시부터 한 시간을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정하고 고시반 구석자리에서 신영음을 들으며 아침을 보냈다. 취업을 하고 평일 아침이 내 의지와는 다른 생활로 채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주말 아침에 커피를 내리며 듣는 신영음은 뭐랄까... 한 주간 내 마음에 쌓인 오욕들을 씻어내는 그런 정화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생활의 일부였던 신영음이 끝났다. 11시가 되면 영화 일 포스티노의 OST인 'Bicycle'이 흐르며 시작됐던 DJ 멘트도 이젠 들을 수 없겠지.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늘 마음이 아프곤 했지만, 이번엔 그냥 아프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그런 공허함 때문에 마음이 좀 힘들다.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생각, 내 20대부터 40대까지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그런 생각 때문이려나.

몸이 안 좋아 휴식을 갖던 시기를 빼고는 무려 25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그 무게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제 또 어디서 영화음악을 들어야 할지, 아니 들을 마음이나 날런지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 한때나마 라디오 PD란 꿈을 갖게 해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개해줬던 멋진 음악들로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 준 신지혜 DJ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안녕...


https://youtu.be/zDGelSrtbhc?si=-Gu2fW4SQboT-dHv

'신지혜의 영화음악' 오프닝 곡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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