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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by 선우정아)

올해 나를 지켜줄 마음가짐

by radioholic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선우정아, '그러려니' 中)


'지선씨네마인드'라는 유튜브를 참 좋아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심리 분석이 때론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의외의 큰 재미가 있어서 그렇다. 얼마 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미란다(메릴 스트립)라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박지선 교수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대처법으로 한 말들이 있다.


(나르시시스트인 상대방의 문제 행동을) 나에 대한 모욕, 나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 내가 이렇게 무시당하며 산다... 이렇게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해요...(중략)...
(나르시시스트를 대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게 뭐냐면 자책과 반추. 이 사람이 잘못하는 건데도,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 건데도 '내가 행동을 다르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을까' 하면서 끊임없이 내가 모욕당했던 그 상황을 반추하면서 내가 다음엔 행동을 다르게 해 볼까, 그거 하지 말라구요.


캡쳐.jpg 그 인간이 쓰레기인게 내 잘못은 아니니까(출처 : 유튜브 '지선씨네마인드 Hidden Track')


우리가 직장 또는 일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 가장 힘든 타입이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을 가스라이팅 하면서 모든 질서를 자기중심으로 돌려놓는 인간들. 우리가 만나는 이상한 인간들 중에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드물고, 사실 저런 나르시시스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에 휘둘리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내 삶이 피폐해지고, 나도 모르게 우울감에 휩쓸려 버리는 것을 한 번쯤은 겪지 않았던가.


나 역시도 회사 생활을 하며 저런 부류들을 만났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택한 방법은 그들을 노골적으로 안보는 것이었다. 지위를 앞세워 나를 멋대로 휘두르려 했을 때 정색을 하며 대응한 후, 먼저 사과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으면 그들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만 이 방법의 가장 큰 후유증은 회사에서 점점 고립이 될 수 있다는 것. 슬프게도 저 나르시시스트들이 자신의 인정욕구를 무기로 회사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생활 얘기를 굳이 쓰고 싶지 않은 것도, 저런 인간들과의 신경전이 너무 더럽고 떠올리기 싫은 경험들이어서 그렇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덕이 있다면 굳이 하지 않아야 할 게 무엇인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자극과 무례에 굴종하는 것은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난 참 늦게 깨달았다. 그냥 '저 인간은 쓰레기인가 보다'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넌 쓰레기'라며 팩트 폭격을 하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을 겪은 후 뒤늦게 안 셈이다. 잘못했다는 반성은 지금도 없지만, 참 미숙하고 바보 같았다는 생각은 든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위축됐을 때 만난 노래가 바로 제목부터 멋진 선우정아의 '그러려니'였다. 인생을 살면서 점점 외로워지고, 그리워지고, 무언가에 힘들어질 때 그에 대응하는 삶의 자세가 맞서 싸우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책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러려니'라는 네 글자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정말 고마운 노래다. 마치 명절에 '넌 왜 결혼 안 하니', '왜 애를 안 낳니'라는 질문 폭격에 '그러게요'라는 무심한 네 글자로 상대방의 기운을 빼는 것처럼, '그러려니' 역시 참 현명한 삶의 대응 방식이 아닌가.


'그러려니'라는 네 글자가 힘이 센 이유는 누군가를 억지로 이해할 필요도, 누군가의 언행에 반응을 할 필요도 없게 만드는 마성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나를 자극하고 해를 가하려는 언행을 이해할 정도의 아량과 수행이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흘려듣고 무시하는 것뿐이다. 그 사람의 의도와 이유를 알려고 들수록 상처받는 건 나니까. 그래서 올 한 해는 날 자극하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마치 염불을 외우듯 저 네 글자를 부단히 되뇔 생각이다. 거창한 좌우명이나 목표보다 내 마음을 안온하게 지켜줄 네 글자, 그러려니... 그러려니...


https://youtu.be/iV9s-jFI_04?si=XKdtPzY10MSTLt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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