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전래동화
석봉아 이 어미는 불을 끈 채로
이 떡을 일정하게 썰었지만
넌 글씨가 개발새발이로구나
다시 산으로 가 다시 산으로 올라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석봉아' 中)
우리가 어릴 적 동화책을 통해 읽었던 착하디 착한 옛날이야기들이 있다. 흥부놀부전, 효녀 심청, 춘향전, 거북이와 토끼... 모두가 권선징악의 미덕을 통해 교훈을 주는 훌륭한 동화들이지만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라는, 이름부터 불한당 같은 한 그룹이 그 선량한 서사들을 살짝 비틀어 기가 막힌 노래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아들을 훌륭히 키워낸 한석봉 어머니(신사임당 아님)의 에피소드까지 녹여내면서.
누가 봐도 쿠바의 전설적인 음악 그룹인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서 이름을 뻔뻔하게 따온 게 분명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하 '불쏘클')은 인디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에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다. 마치 '인디란 이런 것이다 이놈들아!!!'라는 듯한 기세로 기가 막힌 노래들을 쏟아내고는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석연치 않은 결말'의 이름처럼 그야말로 석연치 않게 사라져 버린 전설 같은 그룹이랄까.(물론 그 후에도 가끔 출몰은 하고 있지만...)
몇 해 전 이날치가 '범 내려온다'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난 이제는 볼 수 없는 불쏘클을 떠올렸다. 전통이란 것이 오롯이 전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재가공하여 현재에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재기 발랄한 뮤지션들이기 때문이다.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운드에 현란한 춤사위를 얹어 즐거움을 주는 것도, 착한 전래동화 스토리를 키치적으로 비틀어 어른들도 흥겹게 즐기도록 만드는 것도 예술과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린 이들을 통해 알게 되지 않았는가.
우울하고 힘든 날에 날 웃겨주고 기분을 풀어줄 노래가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약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노래 한 곡으로 우울함이 가라앉을 수 있다니, 이게 어찌 행운이 아닐 수 있을까. 나에겐 불쏘클의 '석봉아'는 심란하고 기분이 무거울 때 웃음을 주는 특효약이자 웃음벨이다. 어제 간만에 출근해서 어수선한 하루를 보낸 탓인지 마음이 헝클어져 있었는데, 퇴근길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적 오물을 살짝 흘려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가사에 특별한 메시지가 없어도, 그냥 흥겹기만 해도 좋은 노래다. 저마다 위안을 얻고 힐링을 하는 포인트들은 다른 법이니까. 꼭 남들이 좋은 노래라고 따라서 들을 것이 아니라, 나를 위로해 주고 웃음을 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 하나쯤은 만들어두면 그 또한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말 오랜만에 날 흥겹게 해 준 불쏘클을 그리워하며...
https://youtu.be/rbk9yfoImJM?si=TH8AMaBg9YADJ-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