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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호프(by 이아립)

당신만의 서라벌 호프가 있나요?

by radioholic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서라벌 호프에 우린 사라지겠지만
서울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아립, '서라벌 호프' 中)


내가 나온 대학교 정문 쪽에 '우미'라는 순댓국집이 있었다. '있었다'는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미의 순댓국과 감자탕은 내 대학 시절의 소울 푸드였다. 그저 젊었던 탓이었겠지만, 그곳에서 소주를 마시고 감자탕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술이 깨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렇게 마시면 엉망으로 취할 때가 많았지만. 그 가게에서 정말 많은 술을 마셨다. 우미에서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또 그곳에 가서 해장을 할 정도로 난 우미라는 식당이 좋았다.


우미를 찾을 때는 대개 좋은 일보다는 울적한 기분을 풀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필기시험에 떨어져도 우미에 갔고, 나랑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면접에서 탈락해도 우미에 갔다. '언론고시' 낭인들이었던 우리는 우리를 도무지 받아주지 않는 방송국과 신문사를 욕하고 서로 위로하며, 없는 돈을 모아 죄 없는 순대와 돼지뼈에 붙은 살들을 먹어치우고 소주를 들이켜면서 울분을 풀었다. 다 지난 얘기지만... 그땐 참 앞이 보이질 않았다. 1년에 10명도 뽑지 않는 좁은 문을 뚫겠다고 안간힘을 쓰던 시절이었으니까.


오늘도 울분의 술잔을 나누고 있나요


그때 순댓국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좌절을 나누고 울분을 토하던 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났다.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고 박수를 받으며 나간 사람도, 결국 실패의 아픔을 애써 숨기며 짐을 싸고 나간 사람도 있다. 그 뒤로 약 15년이 지난 지금, 다들 각자의 생활 속에서 자기 앞가림들을 하며 살고 있는 걸 보면 그토록 진지하고 심각했던 우리의 그 시절 모습이 무색해지곤 하지만, 우미에서 나눴던 고민들과 우리를 달래주었던 순댓국의 진한 맛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때만큼 열정적이었던 시기가 없었으니까.




이아립의 '서라벌 호프'를 들으면 우미에서의 밤들이 기억 속에 소환된다. 노래 속 주인공이 서라벌 호프에서 친구들과 서울의 꿈을 꾸었듯, 나 역시 우미에서 같은 꿈을 꾸던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 때론 설레고 주로 좌절하곤 했으니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동병상련의 감정으로 허름한 술집을 아지트 삼아 함께 보낸 시간들은 모두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기대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노래 속 서라벌 호프와 같은 안식처가 나에게도 있었다. 비록 지금은 사라져 버려 아쉽기 짝이 없지만, 살면서 지치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대학 시절 우미에서의 시간을 떠올려봐야겠다.


마시자... 마시자... 마시자...


https://youtu.be/ER2erTf_7Os?si=Ncgur3o85WvvIXvn

이아립의 목소리는 처연해서 오히려 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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