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차게 앞으로만 달리는 세계는 바보 같아서 놓치는 게 더 많은데 지금처럼 느리게 가야 보이는 태양의 인사는 매일 너를 기다리는 걸 (QWER, '대관람차' 중)
느리게 걸어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 차를 타고 가면 무심코 휙 지나칠 법한 장면들을, 천천히 걷다가 발견하고 마음속에 담을 때의 뿌듯함은 오직 걷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닌, 별 다른 목적 없이 걷고 거닐다가 얻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걷는 사람들은 안다.
요즘은 카메라를 잘 들지 않고 있지만, 출퇴근길이나 평상시에 하루에 반드시 한 장씩 사진을 찍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때가 있었다. 사진에 푹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7년 전 어느 여름날, 퇴근길에 집에 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아현동에 내려 무작정 아현 재개발 지구를 걸었다. 그 폐허 속을 걸으며 목격한 삭막한 모습들에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온몸이 땀에 젖은 상태로 언덕에서 문득 바라본 하늘은 너무 예뻐서 더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걷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을... 그런 하늘이었다.
이젠 더 이상 저 곳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아현동, 2018)
요즘 자꾸만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점점 가속도가 붙는 시간 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는 기분이다. 속절없이 나이가 든다는 표현이 이토록 실감 날 때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급해진 마음에 자꾸 이것저것 해야 할 것 같고,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려 들고 있지만 그러다 보니 또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하는,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을 찍던 그런 여유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있었다. 마흔은 넘긴 지 이미 오래지만, 이런 게 사십춘기인 건가 싶다.
내가 뭔가 허둥대고 불안해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대관람차'를 듣는다. 너무 급하게 뛰지 말고, 불안할 때일수록 천천히 걸으며 숨을 돌리는 게 어떠냐며... 어린 소녀들이 철없는 삼촌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 같아서 들으면 힘이 난다. 노래 가사의 내용처럼 숨차게 달리기만 하는 세계 속에서 놓치는 게 많은 걸 알면서 왜 그렇게 바보같이 허둥대냐는 듯, 따뜻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그녀들의 음성에 정말 많은 위안을 얻었다.
몽환적인 기타 리프로 노래가 시작되면, 잔뜩 긴장해 있던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지며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거기에 드럼소리와 보컬의 목소리가 순차적으로 얹어지며, 제법 빠른 비트임에도 나른함이 느껴지는 멋진 노래가 되어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게 이 노래의 매력이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나면, 너무나 피곤한 오후에 30분 정도 짧지만 깊은 낮잠을 잔 것 같은 그런 상쾌함이 느껴진다. 노래가 휴식과 힐링이 되어주는 것이다.
QWER이 처음 결성할 때부터 그녀들을 응원하며 자발적 바위게가 되었던 아저씨가, 이젠 어엿한 뮤지션이 된 그녀들의 노래에 위로를 받는다.뚜벅뚜벅 성실하게, 누가 뭐라고 떠들든 자기들의 길을 걸으며 지금의 위치까지 다다른 그녀들을 보면서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배운다. 가르침이란 것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렇게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 귀가 가장 먼저 늙는다는데, 너무 일찍부터 다른 세대들의 노래에 귀를 닫아버리면 다른 부분들의 노화도 훅 늙어버릴 것만 같다. 그러니 우리 세대와 동떨어진 어린 아이돌들의 노래라고 가볍게 치부하지 말고, 귀를 열고 젊고 재기 발랄한 뮤지션들이 들려주는 좋은 노래가 주는 힐링을 내 또래 사람들이 느껴보았으면 좋겠다.요즘 아이돌 노래 중에 음악성 뛰어난 노래들이 정말 많고,그런 노래에 감탄하고 좋아하는 건 부끄러운 게 결코 아니니까. 음악엔 나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