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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by 윤상)

우리는 오늘도 서로 벽을 쌓는다

by radioholic
Quelques rimes, pour vous dire
Je vous aime sans dilemme
미안해 모르겠어 무슨 말을 하는지
des mots tendres, a entendre
des mots doux, juste pour vous
몇 번을 되물어도 마찬가진 걸
(윤상, '벽' 中)


얼마 전 베트남 휴가를 가서 놀랐던 게 있다. 스마트폰 번역 기능이 발전하면서 예전에 비해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정말 쉬워졌기 때문이다. 휴가 첫날 알게 된 그랩(택시) 기사와 흥정을 통해 이튿날 좋은 가격으로 하루종일 운전을 부탁하고, 그 분과 현지 부동산 시세까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휴대폰 번역 덕분이었다. 마음만 있다면 외국인들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임을 새삼 실감했다.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기기와 AI 등의 기술 발달로 예전엔 멀게만 느껴졌던 대상들과의 소통이 가능해진 세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함께 지내던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간, 지역 간, 이념 간 갈등이란 것은 늘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기존의 그것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예리하게 날이 서있고 간극이 커져 버렸다. 마치 싸우기 위해 누군가 나를 한대 쳐주길 바라는 그런 위태로운 모습이랄까.


기존의 갈등이 어느 정도에서 봉합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민족이 한민족 한겨레여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선'을 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자를 꼴페미, 남자를 한남충, 노년층을 틀딱이라는 혐오 표현으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 이들 간에는 관용이나 포용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상대를 미워하는 선을 넘어 내 앞에서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그저 혐오하고 비하하기에 바쁜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낯선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기술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놀라움보다 허망함이 느껴진다. 정작 같은 언어를 쓰며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간의 소통 불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사회에서 외국어 번역 기능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봉합하는 소통 기능을 해야 할 언론이 싸움을 부추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포용하며 기댈 곳이 되어 줘야 할 종교계마저 집회 현장에서 폭력을 조장하는 장면들은 정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일단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전쟁터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어느 한쪽은 없어져야 하는 처절하고 끔찍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렵다. 아버지 세대가 자식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현재를 망가뜨리고, 자식 세대는 그런 아버지 세대를 없어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치부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닌, 힘으로 누르고 언어로 조롱하는 적이 되어버린 참담한 세상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없어도 될 벽을 서로 쌓고, 그 벽 너머로 혐오와 조롱이라는 오물을 던지는 처참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시작일 뿐이야 아직도 나에게는
너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지
어떤 게 소중하고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또 미워하고 있는지
(윤상, '벽' 中)


윤상이 부른 '벽'의 이 노래 가사처럼, 지금부터라도 갈등을 겪고 있는 서로가 이야기를 나눠야 할 시기다. 더 늦어버리기 전에, 서로 어떤 게 소중하고 어떤 걸 미워하는지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용기와 관용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말 지옥이 될지도 모르니까. 비록 지금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지라도,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없이는 분열은 심해질 뿐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나누었으면 좋겠다. 노인과 청년은, 남자와 여자는, 진보와 보수는 모두 어느 한쪽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https://youtu.be/CcISCbxkuno?si=cbbmxZysKb1TIz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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