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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겨울(by 나미)

눅진한 사랑 노래

by radioholic
괜찮아 이젠 지난 일은 웃을 만큼
나도 그대도 어리진 않아 사랑은 그대로지만
흰 눈이 내려 그대 다시 날 안아요
그대도 나만큼 외롭다면
이젠 헤어지지 마
(나미, '오랜 겨울 - 어느 겨울날의 재회' 中)


나미의 '오랜 겨울'을 들으면 '눅진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사 내용도, 목소리도 온통 처연한 습기로 젖어 있어서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한 구석에서부터 조금씩 물기가 번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무척 서글프면서도 애틋한 감정으로 채워진 노래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인 걸까.


눅진하다 : 물기가 약간 있어 눅눅하면서 끈끈하다


이 노래는 풋풋한 연애 감정과 달뜬 설렘으로 사랑에 빠져있는 젊은 연인들에게 어울리는 곡은 아니다. 노래 속 감정을 느낄 만큼 그들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테니까. 사랑을 이미 여러 번 해봐서 그게 생각보다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란게 또한 얼마나 사람을 정신 못차게 만들 정도로 좋은 것인지를 알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노래다.


날 무척 아프게 해서, 아니면 내가 상처를 줘서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누군가와 눈이 내리는 날 다시 재회하길 바라는 그리움을 진하게 표현한 가사도 좋지만, 그 내용을 이토록 로맨틱하면서도 애잔하게 표현하는 나미의 음성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나미만큼 끈적하고 소울 넘치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이가 들면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농익은 매력을 표현할 수 있음을 나미라는 멋진 가수는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또 들려주고 있다.




오늘처럼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볼과 코끝이 새빨개지고 발가락이 굳어버릴 정도로 추운 그런 겨울밤에, 그렇게 꽁꽁 얼어붙은 몸을 한 채 급하게 들어간 어느 따뜻하고 조용한 bar에서 노래가 나온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얼어있던 몸이 저릿하게 녹는 와중에 느껴지는 나른함 속에 이 노래를 들을 때, 노래에 담긴 그 애틋함이 왠지 더 사무치게 느껴질 것 같아서 그렇다. 옆에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추운 겨울에 누군가와 함께 몸을 녹이며 들어야 진가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사랑 노래다.


https://youtu.be/nCoKmfvqgkA?si=3VgRhJBK9PA2sq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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