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없으면 어때요~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신형원, '개똥벌레' 中)
국민학교 체육시간에 이 노래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면 친구들과 신명 나게 율동을 따라 했다. 특히 '가지 마라~ 가지 마라~'라는 가사가 나오면 옆 친구의 체육복을 붙들고 흔들며 깔깔댔고, '나를 위해 한번만'이란 가사에는 짧은 검지손가락을 앙증맞지만 힘차게 내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개똥벌레'라는 노래는 밝고 흥겨운 멜로디와 달리 참 쓸쓸하고 서글픈 노랫말을 가진 곡이다. 아무리 우겨봐도 개똥무덤이 집이라 마음을 다 줘도 친구가 없는,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해도 다 떠나버리고 혼자 울며 외로운 밤을 보내야 하는 존재의 원초적 고독을 다룬 노래를 어린아이들의 율동곡으로 썼다니, 어쩌면 우린 인생에 대한 조기교육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어른이 되어 다시 듣는 '개똥벌레'는 정말 마음 아프기 짝이 없는 노래다. 노래 속 개똥벌레와 우리의 모습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늘 내 주변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처지가 바뀌면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결국 남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몇 명뿐이라는 것을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신형원은 오히려 밝은 멜로디에 실어 어둡지 않게 들려준다. 너무 해맑아서 더 슬픈 역설적인 곡이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말은 너무 거친 표현이지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다고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친구라 믿었던 이들 중엔 그저 허울만 좋은 관계였던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약간의 거리를 두며 지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더 소중한 인연이었던 경우가 있지 않던가. 약간은 조심스럽지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 자주 보지 않아도 만나면 편안한 그런 사람들이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한다.
어제 국민학교 친구 녀석과 1년 만에 만나 둘이서 소주와 맥주를 조금씩 나눠 마시고, LP 바에서 서로 별말 없이 노래를 듣다가 세 시간 만에 헤어졌지만 마음이 좋았다. 벌써 33년이 된 친구 사이에는 그저 서로의 부모님 안부를 걱정하고, 건강 잘 챙겨야 한다는 재미없는 대화를 나누며 노래만 듣다가 헤어져도 문제가 없는 편안함이 있으니까. 설령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 해도, 이런 관계만 있다면 사는 데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중식이 밴드의 '나는 반딧불' 속 반딧불과 개똥벌레는 같은 곤충이지만, 난 반딧불이란 예쁜 말보다 개똥벌레라는 투박한 단어에 더 마음이 끌린다. 난 개똥벌레 노래에 맞춰 율동을 배우며 추억을 만든 세대라서 그럴 거다. 그리고 왠지 살짝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개똥벌레가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이제 알게 되어서 더 그렇다. 그때 하얀 체육복을 입고 함께 앙증맞게 춤을 추던 그 친구들은 다들 잘 있을까.
https://youtu.be/5uEMx_0RdEM?si=-gbbRVCtUMpNgC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