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은(by 신해철)

때로는 미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by radioholic
한평생 남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오다
아주 그게 뼛속까지 박혀버린 인종들 있잖니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뭔지 알아
남들도 자기처럼 살기를 바라는 거지 쳇!
(신해철, '아주 가끔은' 中)


난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를 참 좋아한다. 중년의 권태에 찌든 직장인 아저씨가 퇴근길 지하철 창문으로 우연히 보게 된 댄스학원 선생님에게 반해 시작하게 된 사교댄스로 인해 삶의 재미와 활기를 다시 찾게 된다는 이야기. 대학 시절 이 영화를 볼 땐 일본 영화 특유의 유머와 감성이 좋았다면, 최근에 TV를 통해 다시 보았을 땐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살짝 뭉클해졌다. 내가 이제 영화 속 스기야마(야쿠쇼 코지)의 나이에 가까워졌기 때문 것 같다.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지켜야 할 게 많아지고, 눈치를 볼 일도 많아진다. 그놈의 나이가 주는 무게감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은 상실감도 느껴지고, 어느샌가 공허함과 무력감에 스멀스멀 잠식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퇴근길 지하철에서 짓고 있던 그 멍한 표정이 그래서 남 일 같지가 않았다.


평소의 내 표정도 이렇지 않을까...(출처 : 영화 '쉘 위 댄스?')


만약 영화 속 스기야마가 지하철에서 댄스학원 창문 속 여자 강사를 우연히 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댄스학원에 발을 딛지 않았더라면 그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계기 없이 계속 시들어 갔을 게 분명하다. 비록 다소 불순한 동기이긴 했지만 용기를 내어 댄스학원 앞을 찾아간, 평소의 그라면 그저 미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행동이 없었더라면 스기야마의 인생은 얼마나 건조했을까. 그래서 인생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미쳐보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지하철에서와는 사뭇 다른 저 표정(출처 : 영화 '쉘 위 댄스?')




故 신해철의 '아주 가끔은'을 한창 듣던 학생 시절엔, 이 곡이 젊은 세대의 통통 튀는 모습을 나무라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노래라고 생각했다.(물론 그 내용이 맞다) 다만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다시 들어본 이 노래는 청년 시절을 지나 조금씩 삶이 저물어 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풀이 죽어있는 우리 세대를 위한 노래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속 스기야마가 춤을 추며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처럼 당신들도 용기를 내라고. 너무 남의 눈치만 보며 살다가 그런 습성이 뼛속까지 박혀 남에게 강요하는 꼰대가 되어버리지 말고, 아주 가끔은 미친 척이라도 해서 자기 삶을 찾으라는... 중년들을 위한 응원가라고 해야 할까.


아침의 피곤을 떨치고 검도장을 가는 이유도, 퇴근하고 졸음이 쏟아져도 기타 줄을 조율하고 레슨곡을 연습하는 이유도, 못하는 요리나마 계속해보려는 이유도 결국 내 생활이 메마르지 않게 하려는 내 최소한의 노력이다. 그런 것들마저 없는 중년의 삶이란 너무나 삭막할 테니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안경을 찾으려고 머리맡을 더듬거리다가 문득 생각난 이 노래가 내 오늘 하루의 BGM이 되었다.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에 이 노래를 멋지게 부르던 신해철 형님이 문득 그리워졌다.


https://youtu.be/ruCS4_w46O4?si=jDOYybeij9ClBn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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