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린 용감했을 텐데(by 데님키즈)

지금은 쫄보가 되었어요

by radioholic
작은 몸짓으로도 당당하던
날 기억해야 해 날 잊으면 안 돼
작은 걱정도 없이 춤을 추던
날 기억해야 해 날 잊으면 안 돼
(데님키즈, '어릴 적 우린 용감했을 텐데' 중)


중학교 시절, 내가 국어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셨던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늘 핏기 없는 얼굴에 헐렁한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시니컬하지만 강단 있는 말투를 가지셨던 30대 중반의 여자 선생님이셨다. 그분이 가진 카리스마도 멋졌지만, 국어를 문제 풀이를 위한 게 아닌, 우리가 정말 문학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쳐주셔서 좋았다. 어느 날 그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셨다.


ㅇㅇㅇ! 나와서 노래 한 곡만 불러주라!


평소에 학생들과 살갑게 지내는 타입이 아니신 분이, 더군다나 내가 좋아라 하던 선생님이 친히 날 부르시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뛰쳐나가서 꽥꽥 노래를 부르고 들어오니 선생님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오늘 너의 우렁찬 목소리가 필요한 날이었다고. 덕분에 기분이 풀렸다는 말과 함께 다시 평소의 그 시니컬한 표정으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생각해 보면 아마 직장인으로서, 혹은 엄마나 부인의 역할로부터 많이 지치셨던 그런 날이지 않았을까.


30년 전, 선생님의 한 마디에 교실 앞으로 나가 망설임 없이 노래를 불러 제끼던 까까머리였지만, 지금의 나는 수줍고 겁이 많은 아저씨가 되었다.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것이 싫고, 술기운이 몸에 퍼져야 노래방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소심한 아저씨 지금 바로 내 모습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그때보다 많이 점잖아진 내 모습에 놀라곤 한다. 중간의 그 세월 동안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까.


어린 시절엔 어디든 다 무대였더랬죠(@베를린)


데님키즈의 이 노래를 들으면 새로운 것이면 뭐라도 하고 싶어 드릉드릉거리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생각나서 좋다. 지금은 낯선 것에 손대기를 주저하고, 어디에 있든 굳이 튀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소극적인 사람이 되다 보니 그때 그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과 같이 느껴진달까. 어릴 적 그 용감함을 계속 유지했다면 난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데님키즈는 나에게 가장 오래 기타를 가르쳐주신 예전 레슨 선생님이 속한 그룹이다. 선생님이 가끔씩 살짝 쑥스러운 표정으로 밴드 생활을 얘기해 주실 때마다, 나보다 어린 분임에도 불구하고 참 담대하고 굳건하게 보여서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처음으로 밴드 이름을 얘기해 주시며 노래를 소개해주신 날, 이 노래 인트로의 싱그러운 사운드가 너무 좋아서 새벽까지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래간만에 내 용감했던 어린 시절을 반추하면서.


올해는 작년보다는 조금 더 용기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노래를 만들고 기타를 치고 있으실 나의 예전 기타 선생님과 데님키즈가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https://youtu.be/0KXQ249bOJI?si=rCdmXysyUzEpQi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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