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습관이 남긴 흔적
긴 연휴를 마치고 정말 오랜만에 도장에 갔다. 지난 주말부터 몸속에 차곡차곡 쌓인 음식들, 혈관과 내장 곳곳에 끼어 있을 기름기 탓인지 몸이 정말 한없이 무거웠다. 며칠 동안 비어있던 도장의 바닥과 공기가 무척 차가웠는데도, 살짝 몸을 풀고 나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나처럼 출근길에 나온 사람들과 휴가임에도 새벽 운동을 마다하지 않고 도장에 온 사람들이 한데 섞여 호구를 쓰고 단체연습을 시작했다. 평소 운동의 절반 정도의 훈련량인데도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진다. 몸이란 건 정말 이토록 정직하다. 그걸 느끼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겠지.
운동을 마치고 호구를 정리하는데 문득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갑상끈이 눈에 들어왔다. 상태로 봐선 하루이틀 사이에 이렇게 된 게 아닐 텐데 그동안 딱히 의식하지 못했던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무신경한 사람이다. 심사 준비를 한다며 한번 교체를 한 게 2년도 안 됐는데 언제 이렇게 낡아져 버린 걸까.
갑상은 허리에 둘러매어 급소와 허벅지 등을 보호하는 보호구다. 갑상끈이 낡았다는 것은 허리에 반복해서 둘러맸다 풀고, 끈이 땀에 젖었다 마르면서 끈이 조금씩 마모되고 삭았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갑상끈이 헤지는 동안 나의 검도는 조금이라도 성숙해지긴 한 걸까.
설령 실력이 그리 늘지 않았더라도 새벽 일찍 일어나 땀 흘리고 숨을 헐떡이는 시간들을 계속해서 감내해 왔다는 것, 그런 시간들의 남긴 흔적이 이렇게 낡은 갑상끈에 남아있다. 시간과 습관이 남긴 흔적들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가는 것, 그게 좋은 인생이 아닌가 싶다. 올해도 변함없이 숨쉬듯 운동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