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운동의 가장 힘든 순간은 오늘처럼 추운 날, 침대에서 일어나서 차 시동을 걸기 직전까지의 시간이다. 그 20분 남짓한 시간만 잘 넘기고 나면 한겨울에도 정말 뜨겁고 상쾌한 아침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은 좀체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마흔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아침에 눈을 일찍 뜨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멍한 정신의 방해를 무릅쓰고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주말 OB 운동을 시작한 지 햇수로 3년이 되어간다. 주말 운동의 시작은 아주 조촐했다. 명색이 검도부인데 운동하는 졸업생이 이렇게 없다는 사실이 말이 되냐며, 그나마 죽도를 놓지 않은 사람들끼리라도 가끔이나마 모여서 운동하자는 2년 선배의 말에 나와 내 동기가 동조하여 3명이서 시작한 모임이었다. YB들한테 쪽팔려서라도 우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주말 운동의 원칙은 누가 빠져도 절대 미안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기. 아무도 못나오면 그 날은 쉬면 되는거고, 설령 나올 마음은 있는데 컨디션이 안 좋으면 운동 끝나는 시간에 와서 국밥만 먹고 가도 ok.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두 명이서 운동하는 날도 있었고, 그냥 커피 한잔 하며 서로 안부만 묻고 헤어지는 날도 있던 모임이 OB들의 관심을 얻으며 점점 커져 어떤 날은 YB들이나 외부 사범님들까지 합류해 15명 넘게도 오는 그럴듯한 운동 모임이 되었다.
겨울이지만 뜨겁다
주말 운동은 갈 때마다 나에게 무언가를 남겨준다. 한창 졸음 많을 나이임에도 토요일 아침에 멀리 학교에서부터 꾸역꾸역 짐을 싸들고 오는 재학생들의 모습에 미안함 섞인 흐뭇함을 느끼기도 하고, 지방에서 회사 대표를 하고 있어 늘 바쁜 선배형이 가쁜 숨으로 후배들과 칼을 맞춰주시고 시원하게 밥값과 찬조금까지 주고 가는 모습에 감동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운동 마치고 먹는 막국수와 국밥은 왜 그리도 맛있는 것인지.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에게 지친 마음을 이렇게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 기회가 나에겐 주말 운동인 셈이다.
아무런 조건이나 단서를 달지 않고, '그냥'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란 것을 난 검도부라는 동아리를 통해 느낀다. 큰 마음을 먹지 않아도, 만나기 위해 무언가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라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록 오랜 기간 운동을 안 했더라도, 한동안 서로 얼굴을 못 봤더라도 먼지 쌓인 호구와 죽도를 메고 오거나 그냥 밥만 먹으러 오기만 해도 반가운 사이라니. 학교 다닐 때 그토록 무서웠던 형들과 이젠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동질감과, 삼촌 같은 낯선 선배들과 운동하겠다고 와주는 후배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들이 모여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이 모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졸음을 이겨내고 차의 시동을 걸어 마침내 출발하게 되면 이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대에서 아현으로 넘어갈 때 눈앞에 펼쳐지는 보랏빛 하늘 풍경이다. 졸음이 가시지 않아 약간의 몽롱함이 있는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아현동 너머로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내가 주말 운동에서 찾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런 기분 좋은 상태에서 운동을 하고 난 후의 그 후련함이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를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이 쌓여 추억이 되고 좋은 인연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정말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