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리움이 다 가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여 주오
미움이 싹트기 전에 사랑한다고 한다고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그대 손길로 쉬게 해 주오
언제나 그대 품 안에 영원하다고 하다고
(이치현과 벗님들, '다 가기 전에' 中)
'벗님들'이란 그룹명은 얼마나 예쁜 말인가. 친구란 단어보다 '벗'이란 말이 주는 정감도 좋은데, 심지어 거기에 '님'이란 존칭까지 붙여 '벗님들'이라 칭하는 것이 너무나 따뜻하지 않은가. 물론 시대적인 배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벗님들이 활동하던 80년대만 해도 노랫말은 물론 그룹의 이름에도 낭만이 있었다. 거칠고 날카로울 것만 같은 록밴드들이 벗님들, 다섯손가락, 사랑과 평화라는 세상 순둥하고 부드러운 이름을 달고 나와 엄청난 명곡들을 쏟아내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이치현과 벗님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 어린 시절 공전의 히트곡인 '집시여인'을 통해서였고, 그 이후 '사랑의 슬픔'이나 '당신만이'와 같은 그들의 노래들을 다 좋아했다. 벗님들의 노래는 따뜻함과 쓸쓸함의 정서가 공존해서 좋았다.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이치현의 차분하고 지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에 담아 나오는 곡들은 하나하나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들의 수많은 노래 중 나의 최애곡은 단연 '다 가기 전에'라는 곡이다.
이 노래를 스피커의 울림이 큰 lp 바에서 들으면 마음에 전율이 일어난다. 도입부의 찐득한 일렉기타 사운드에 이어 이치현의 살짝 떨리는 듯한 미성이 공기를 타고 살짝 먼지가 묻은 느낌으로 귀에 들어올 때의 묵직한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서, lp 바에 가면 자주 이 노래를 신청하곤 한다. 귀에 꽂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크게 울리는 사운드의 깊은 공간감이 주는 감동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이치현의 매력적인 음성은 좋은 사운드로 음미하며 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도 들곤 한다.
너무나 로맨틱한 구애의 감정을 담은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엉뚱하게도 괜스레 조바심이 일어난다. 더 늦기 전에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을 서둘러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이 가기 전에 들어야 할 것만 같은 목소리, 이번 달이 가기 전에 건네야 할 말, 혹은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그리움이 다 가기 전에, 미움이 싹트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애틋한 가사의 내용은 단지 연인이나 흠모하는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부탁이 아니다.
우린 결코 시간이 없지 않음에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들을 미루고 유예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게으름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늘 곁에 계실 것만 같은 부모님은 점점 쇠약해져 가시고, 친구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조금씩 멀어져 간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부고를 듣거나,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야 후회하고 탄식을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는가.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주변에 사람들은 조금씩 줄어가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해야 할 것들은 많아진다. 그것들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닌,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한번 더 만나고 마음을 표현하는 작은 일들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간 꼭 봐야지 하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메시지라도 보내서 안부를 묻는 건 어떨까. 그런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하지 않다가 황망하게 소중한 이들을 보내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전에 말이다. 지금도 시간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고 또각또각 지나가고 있다.
https://youtu.be/wJlaldhJH4Q?si=oYVUlkwAVa7xwg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