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에게 존중을 담은 인사를 한다는 것
안녕 멀어지는 나의 하루야
빛나지 못한 나의 별들아
차마 아껴왔던 말 이제서야
잘 지내 인사를 보낼게
(범진, '인사' 中)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근데 어쩌랴. 정말 시간이 갈수록 빨리 달려가는 것을. 과학적으로 나이가 들면 뇌의 활동 속도가 느려져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TV에서 보고 무척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시간이 빨리 가는 것 역시 노화의 증거였던 셈이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에 급급한 탓인지, 내가 열심히 생활한 하루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기분이다. 어릴 땐 억지로 일기라도 쓰며 오늘 뭐 했나를 생각해 봤고, 나이를 먹으면서 블로그나 SNS를 통해 지난 하루를 반추해보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것도 점점 귀찮아졌다. 그러니 어제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를 떠올리기 위해 한참 동안 낑낑대는 것이겠지.
어린 시절에 그토록 시간이 안 간다고 느껴졌던 것은 물론 뇌와 신체의 반응 속도가 빨라서이기도 하지만, 나날이 겪는 새로운 경험들이 강한 기억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자면 비록 나이가 들더라도 새로운 것을 다양하게 접한다면, 덧없이 시간이 가는 허무한 느낌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뇌와 신체의 노화가 시간을 빠르게 느끼도록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린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난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 너무나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차고 넘칠 테니 말이다. 그런 생활들로 채워진 내 하루는 참 길고 꽉 차있을테니 미련 없이 보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난 범진의 '인사'라는 이 노래를 참 좋아한다. 누군가는 변기물을 흘려보내듯 무심히 보냈을지 모를, 내가 살아낸 하루에 대한 성실함과 존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래 속에서 떠나보내는 대상이 어쩌면 추억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추억이나 사랑하는 이와의 기억도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니까. 내가 성실하게, 혹은 아프게 보낸 하루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지지 않은가.
나는 내가 살아낸 24시간, 1440분으로 채워진 하루에게 어떤 방법으로 인사를 하면서 보내줄 수 있을까. 순간순간의 느꼈던 고민과 진심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성실하게 글로 남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이렇게 나에게 생각할 계기를 주는 노래를 듣거나 생활하면서 느낀 감정들이 허무하게 휘발되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기억들을 활자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범진의 너무나 멋진 목소리에 실린 가사들을 곱씹으면서.
https://youtu.be/LP0lRsckX1A?si=pL5DIo85tjnLQvs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