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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by 불독맨션)

옛 친구가 준 노래 선물

by radioholic
저 파란 하늘 구름 위로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좋은 그대 있어
지금 난 행복합니다.
(불독맨션, '좋아요' 中)


오늘 오후 반차를 냈다. 내일 있을 공연을 위해 머리도 좀 잘라야 했고, 합주도 잡혀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올해 마지막일지 모를 벚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봄은 들쭉날쭉 비가 온 탓에 지난 주말엔 벚꽃이 많이 피지 않았는데, 내일은 강한 비바람이 온다 하니 벚꽃을 볼 수 있는 날이 사실상 오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어제 퇴근 무렵 갑자기 반차를 올린 덕분에 오늘 아침에 부장한테 그닥 유쾌하지 않은 투덜거림을 듣긴 했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벚꽃이 흐드러진 합정동 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BGM으로 무한반복해서 들은 곡이 바로 불독맨션의 '좋아요'였다.


좋은날이었다


들으면 그냥 이유 없이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가 있다. 나에겐 불독맨션의 '좋아요'가 바로 그런 노래다. 즐거운 날에 들으면 더 즐겁고, 우울한 날에 들으면 아주 살짝이나마 그 우울함이 살짝 물러나게 해주는... 나에겐 정말 축복과도 같은 곡이다. 저 위에 쓰여진 가사 네 소절만 봐도 단 하나의 부정적인 뉘앙스 없이, 예쁘고 긍정적인 단어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 가사들이 기타와 피아노 선율에 실려 귀에 날아와 닿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싱글싱글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느껴지곤 한다.


내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건 국민학교 동창 녀석이 나에게 선물로 준 불독맨션 2집 CD를 듣고 나서였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 시절 받았던 걸 감안하면 20년은 족히 된 선물이다. '인디음악'이라는 명칭도 없던 때부터 나보다 훨씬 일찍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접하고 좋아하던 그 친구가 어느 날 들어보라며 나에게 준 이 CD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라틴풍의 멜로디에 흥이 넘치는 가사를 얹은 노래들은 언제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신이 났다. 이 앨범에 실린 노래 모두 명곡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지만,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날 사로잡은 노래는 3분도 되지 않는 '좋아요'란 짧은 곡이었다.


CD 속지에서 이미 라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앨범


내가 어쿠스틱 기타에 매력을 느끼고, 지금도 레슨을 받으며 조금 더 좋은 연주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건 불독맨션의 리더 이한철이란 뮤지션의 영향이 참 크다. 언제나 해맑은 얼굴로 어쿠스틱 기타를 어깨에 메고 나와 기분 좋게 찰랑거리는 기타 스트로크에 밝은 멜로디와 가사를 들려주는 이한철의 노래를 들으면 늘 힘이 났다. 그가 부른 '슈퍼스타'라는 노래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것도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다. 비록 난 노래는 잘 못하지만, 피크를 쥔 손을 나비처럼 가볍게 하늘거리며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기타 연습을 한다. 노래야 다른 사람이 잘 불러주면 되는 거니까.


난 이한철 같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을 보면 호감을 넘어 경외감까지 느끼곤 한다. 타인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긍정의 에너지를 갖기 위해 본인은 어떤 삶의 경로를 걸어왔을지 짐작이 안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매사를 살짝 비관적으로 보고, 밝은 것보단 어두운 것에 좀 더 시선을 두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다다를 수 없는 경지라 더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난 이한철이 좋고 그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가 좋다. 원래 반대가 더 끌리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앞으로도 우울한 날이 오면 슬며시 이 CD를 꺼내어 들을 것 같다.




내게 이 CD를 선물해 준 그 녀석은 지금 부산에 내려가있다. 하려던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늘 안쓰러웠는데, 어느 날 연락해 보니 부산이라며 나중에 보자고 한 게 꽤 오래전 일이다. 지금도 가끔씩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지만, 선뜻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만남을 계속 유예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그 녀석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보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33년 전 유치했던 국민학교 시절 내 모습을 알고 있는, 그리고 나에게 잊지 못할 음악 선물을 준 친구니까.


곧 보자 택아.



https://youtu.be/LsZtkpuNh-o?si=umTrAZe8x19oTK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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