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될거야(by 구피)

근거 없는 낙관이 필요할 때가 있다

by radioholic
모두 잘될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복잡하게 꼬여있어도 그리 걱정하진 마
화를 낼 것까진 없어 누구 잘못도 아닌데
다만 때가 아니라고 편히 생각해 버려
(구피, '다 잘될거야' 中)


얼마 전 있던 인사에서 승진을 했다. 회사 안에서 입지가 그리 좋지 않았던 탓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사였다. 자세한 얘기를 여기 옮길 도리도, 생각도 없지만 회사에서 소위 '이너써클' 행세를 하는 이들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을 때 어디까지 노골적으로 밀려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지금까지의 내 회사 생활이었던 것 같다. 이미 많이 밀린 승진이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꽤나 늦게 팀장이란 직책을 달게 되니 축하한다는 인사도 기쁨보다는 민망함으로 다가왔다.


평생 실무자로 살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회사 생활을 하니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아서 좋았던 면들이 있었다. 물론 회사라는 판이 승진을 못하는 사람을 낙오자로 간주하는 법이고, 어떤 이들이 점잖고 젠틀하게 던지는 멸시에 종종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건 그냥 직장인의 도리를 훌륭하게 수행하지 못한 내 업보라고 생각했다. 그런 회사 생활이 지옥 같지 않았던 것은 주변에 소수지만 믿을만한 좋은 사람들이 존재했고, 내 인생이 회사 안에서만 맴돌진 않을 것이란 막연한 긍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칠기삼'이란 말만큼 인생의 진리가 담긴 말이 있을까. 어릴 때 나는 저 네 글자가 무척 안일한, 치열하게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레토릭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운빨'이니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는 그런 안일한 핑계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철없던 시절에 비웃었던 저 네 글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지를 절감하는 중이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리고 나에게 생기는 일들도 다 운칠기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나의 승진에서도 운칠기삼은 예외가 아니었다. 나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던 이들이 예전과 달리 인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주목받지 못하는 부서에서 낑낑대고 있는 나이 든 실무자를 다소 안쓰럽게 바라본 기관장과 임원의 결정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입견 없이 나를 소리 없이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업무적인 능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으니, 실력이 지금까지의 인사를 좌우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말이다. 결국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인생이 운칠기삼임을 안다면... 부질없는 걱정도 많이 줄겠지


잘해보기 위해 몸부림을 쳐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시기가 있는 반면, 적당히 마음을 내려놓고 반쯤 체념을 한채 살아도 뭔가 이루어지는 시기도 있다. 내 인생을 움직이는 주체는 꼭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불가항력과 운에 의해 삶이 움직여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인사가 난 이후 다소 혼란스러운 2주를 보내는 와중에,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려온 흘러간 유행가의 한 소절이 마음속에 깊숙이 꽂혔다.


헤이 헤이 헤이 산다는 게 그런 거지
특별할게 뭐 있겠어 아등바등할 건 없어




90년대 말에 상당한 존재감을 뽐냈던 구피의 매력은 '많이많이'나 '비련'과 같은 댄스곡에서 빛을 발하지만, 사실 난 그들의 노래 중 '다 잘될거야'를 참 좋아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정말 '그래... 잘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마음속에서 움을 텄기 때문이다. 사필귀정과 새옹지마, 그리고 운칠기삼으로 점철된 인생에서는 때론 이런 뻔한 위로와 격려의 말도 필요하다. 어차피 인생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안다면, 힘겨운 지금을 잘 넘길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승진을 하고 회사 생활의 다른 국면을 맞이하는 지금, 와이프는 사회생활에서 또 다른 큰 결정을 한다. 그동안의 과정이 쉽지 않았고, 고통스러운 고민 끝에 내리는 결정이라 마음이 많이 힘들 걸 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이번에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으니 당분간은 그 그늘에서 쉬어 가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노래 제목처럼 다 잘될 거니까, 아등바등하지 말고 잠시 숨을 돌리자고 말이다. 90년대를 풍미한 세 남자의 노래가 무려 20여년을 훌쩍 지나 우리에게 이토록 큰 위안과 격려가 되어주고 있다.



https://youtu.be/a7snGhYQMvQ

고마워요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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