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노숙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무슨 일이 있었나 빗속을 거닐었나
저 까만 발로...
꿈꾸고 있는 걸까 뭐 할 말이 있을까
어디 얘기를 들어볼까
길에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버릴 거예요
아저씨 일어나 기운 내요
(자우림,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中)
어느 추웠던 겨울밤,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우리 삼 남매를 거실로 부르셨다. 약주를 한 잔 하셨으니 으레 하시는 술주정을 하시려나... 하는 마음에 서로 곁눈질을 하며 투덜대던 우리 남매들에게 아버지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집에 오는 길에 한 남자가 쓰레기통 속에 있던 우유팩을 꺼내 그 안에 남아있던 우유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는 모습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셨다는 이야기. 그 말씀을 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떠오를 정도로 참담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셨다.
저 날이 언제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가 IMF 사태로 온 나라가 힘들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미 그전에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우리 집의 가세는 기울어져 있었기에, IMF는 우리 가족에게 조금 더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특히나 네 가족을 어떻게든 건사해야 하는 가장이었던 아버지에겐, 또 다른 가장이었을지 모를 어떤 이의 그 안타까운 모습이 너무나 충격이었던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그 이후 그날의 장면을 다시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IMF는 분명 당시에 이 나라에 살던 사람들을 가혹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자우림의 이 노래를 지금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때가 바로 IMF 사태가 절정으로 치닫던 1998년도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능을 마친 뒤에도 딱히 신날 일이 없던 내게 유일한 즐거움은, 용돈을 아껴 구입한 테이프와 CD를 듣는 일이었다. 자우림의 데뷔 때부터 그들에게 열광했던 나에겐, 수능이 끝나고 때마침 발매된 2집은 정말 명곡으로 채워진 선물과 같은 명반이었다. 그 속에 담긴 14곡이 모두 좋았지만 당시에 온통 내 귀를 사로잡은 노래는 타이틀곡이 아닌 바로 이 곡,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였다.
노래 속에 담긴 가사가 IMF라는 당시 상황에 대입되면서 우리 마음속을 파고드는 묵직한 서글픔이, 도입부의 경쾌한 비트와 함께 이어지는 신나는 리듬과 천진난만한 코러스와 어우러지면서 이 곡은 아주 독한 블랙코미디가 되어버린다. 제목만큼이나 재기 발랄한 줄만 알았던 노래가, 사실은 추운 날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길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힘겨운 모습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실제로 이 당시는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인해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지에 노숙인이 점점 늘어갔던 그런 어두운 시절이었으니까. 그렇게 힘든 삶을 살던 이들을 무척이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이 노래가 난 무척이나 좋았다.
이 노래가 나온 지 대략 27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얼마만큼이나 살기 좋아진 것일까. 시간이 흘러 지금 세대에겐 IMF가 그저 아버지 세대가 겪은 불행했던 사건 정도로 기억되고, K로 대표되는 각종 신드롬에 힘입어 이젠 우리도 선진국이 아니냐며 흐뭇해하는 현재의 분위기가 나는 아직 어색하다. 90년대 중반까지의 화려했던 호황기가 하루아침에 공황기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목도했던, 심지어 그 고통을 직접 겪어야만 했던 우리 세대들에겐 이런 어색함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취기 어린 넋두리에 무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던 고등학생이, 이젠 그때 아버지의 나이에 근접하여 이 노래를 듣는다. 그 당시에 어쩔 수 없이 차가운 길 위에서 힘들게 헤매야 했던 분들이 지금은 따뜻한 집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편안한 생활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예전에 비해 요즘 거리에서 노숙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디론가 숨기고 내몰아서가 아니라, 이 노래가 나왔던 그 춥고 힘들었던 시절에 비해 이 세상이 살기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https://youtu.be/nJLxiGikuNY?si=bDZPFTrjx4lcApB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