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두고 온 크리스마스(by 오태호)

함께 할 누군가가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by radioholic
허무한 사랑도 미련도 내리는 흰 눈에 덮여
세월에 쓸려 갔으면 널 두고 온 크리스마스
나 혼자 보고 싶은 너에게 외로운 인사를 하네
Merry Merry Christmas
(오태호, '너를 두고 온 크리스마스' 中)


난 내가 크리스마스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30대를 지난 이후의 나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라는 단어에 무감해졌다고 여겼더랬다. 크리스마스에서 연말로 이어지는 흥겨운 분위기는 좋지만, 성탄절이란 날 자체는 예수님 덕분에 하루를 쉴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도 아닌 내가 예수님 탄생일에 쉬는 게 맞는건지 하는 아주 쓸모없는 의문을 가지면서. 하긴... 우린 석가탄신일에도 쉬는 관용을 가진 민족이었지.


그랬던 내가 요즘은 캐롤 앨범을 하나씩 사고 집에서 듣는 재미에 빠졌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아침 라디오들을 정주행 한 뒤, 캐롤 음반 한 장을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오전의 나른함을 조금 더 즐기는 시간이 나에게 주는 정서적 포만감은 어떻게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좋다. 오직 연말에만 누릴 수 있는 이 가슴 따뜻한 순간은 아마 마흔을 훌쩍 넘은 시기부터 정말 소중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캐롤이란 것이 원래부터 이렇게 멋지고 좋았던 장르였던 것일까.


작년에 샀던 이 앨범이 올해 연말을 행복하게 채워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 캐롤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 음악을 누군가와 함께 즐긴다는 기분 때문이었지 않았던가. 짝퉁 테이프를 팔던 길거리 리어카에서 경쾌하게 울려 퍼지던 캐롤부터, '달릴까 말까~'를 반복하며 아이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심형래의 코믹 캐롤까지 모두 좋았던 이유는 곡의 퀄리티보다는 그 음악을 함께 듣고 부르며 즐거워할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혼자 듣는 캐롤이라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것일까.


그런 쓸쓸한 정서를 담았기에 오히려 나만 좋아하고 싶은 캐롤로 난 오태호의 '너를 두고 온 크리스마스'를 꼽는다. 상대방의 마음은 그게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나 보고 싶은, 함께 있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사람을 어딘가에 남겨두고 온 사람이, 홀로 맞이해야 하는 외로운 크리스마스의 풍경이 결코 우울하지 않은 멜로디에 담겨 더 큰 애잔함을 주는 노래. 슬픈 가사임에도 기분 좋게 가슴이 두근대는, 어쩌면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옛 노래 가사와는 반대되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내 추억 속의 캐롤이다.




요즘 들어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되어주거나 함께 의지하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성공이란 생각을 한다. 아무리 나 혼자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것들이 있고, 그럴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도.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가 어쩌면 음악인지도 모른다. 가수 이문세에게 이영훈이란 작곡가가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만약 이승환에게 오태호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승환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어렸던 내가 발라드란 장르에 매료될 수 있도록 해준 이승환 1집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의 작곡가가 오태호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난 그저 이름밖에 몰랐던 오태호란 사람이 궁금했다. 그 후 이승환과 함께 '이오공감'을 만들고 그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매했을 때,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난 오태호 1집 카세트를 얼마나 반복해서 재생했는지 모른다. 타이틀이었던 '기억속의 멜로디'도 너무나 좋았지만, 수록곡 중 날 가장 사로잡았던 건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너를 두고 온 크리스마스'였다.


외국 캐롤에 시큰둥했던 중학생 시절의 나에게(그땐 아직 머라이어 캐리 누나의 캐롤이 출시되기 전이었다), 이승환의 '크리스마스에는'과 오태호의 이 노래는 정말 최고의 성탄절 캐롤이 되어주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다섯 글자가 사람들에게 왜 기쁨과 설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난 이 노래들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이승환의 캐롤에 담긴 환희의 정서도, 오태호의 캐롤에 담긴 외로움의 정서도 모두 크리스마스에 각자 느낄법한 분위기가 아니던가.


혹시 기존의 캐롤이 살짝 식상하시다면, 그리고 어딘가 촌스럽지만 애틋한 옛 정서를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이 노래를 꼭 한번 들어보시길. 설렘과 서글픔 사이 어딘가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는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가 이 노래 제목과 달리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따뜻하게 맞이하며 보내시기를.



https://youtu.be/FWDtkN539_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by 자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