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대 평론가를 추모하며...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하나이 우뚝 서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민기, '아름다운 사람' 中)
엊그제 퇴근길에 집에 오다가 서점에 들렀다. 애초부터 사고 싶은 책은 명확했는데 그 책을 집어 들기까지 왜 그토록 많은 망설임이 날 주저하게 만들었을까. 계산을 하고 책을 가방에 넣으면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저자에게 닿을 수 없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소중히 잘 읽겠다고. 그 책은 바로 故 김영대 평론가의 유작인 「The Songwriters」다.
나름 단골인 LP바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며 멋진 노래들과 함께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 숙취로 멍한 상태에서 그의 부고 소식을 접한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지금까지도 난 그의 부재가 도무지 믿어지질 않는다. 지금도 유튜브에 들어가면 안경을 쓴 어느 착한 형이 싱글벙글 웃으며 음악에 대해 아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해 줄 것만 같다.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김영대란 사람은 늘 그런 편안하고 친숙한 존재였으니까.
난 음악을, 특히 우리 가요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가요에 대해 쓴 책은 웬만하면 읽지 않는다. 내가 아끼는 노래에 대한 타인의 생각이나 해석이 나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김영대 평론가가 아주 세심하게 써 내려갔을, 한국의 발라드 속에 담긴 사랑의 언어들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문장들을 보며 이제 누가 우리 가요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설파해 줄 수 있을지 그저 먹먹한 마음만 들고 있다.
이 노래는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운명의 순간 앞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결을 꼼꼼하게, 하지만 담담하면서도 고즈넉하게 털어놓는다(... 중략...) 누군가를 떠나보내려는 순간 우리에게 찾아오는 첫 번째 감정은 그 이별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부정이다. 이 노래에서는 그걸 '이별이라고 하지 않겠다'고 표현한다. 이별을 부정하고픈 마음의 근거는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그리 쉽게 잊힐 리는 없다는 확신이다.(28p)
- 「The Songwriters」 中 <슬픈 인연>
김영대 평론가가 나미의 <슬픈 인연>의 노랫말에 대해 고찰하면서 써 내려간 저 문장들은, 어쩌면 그를 황망히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슬펐다. 내가 이 책을 사는 것을 주저했던 이유도, 이 책이 그가 남긴 마지막 유작임을 인정해 버리기 싫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와 그것을 담백하게 풀어 이야기하는 표현력, 그리고 몸에 밴 겸손함까지 모든 것이 좋아서 질투까지 났던 존재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현실을 지금도 부정하고 싶으니까.
모처럼 강원도에 여행을 와서 몇 시간의 운전의 여독을 풀 겸 숙소에 잠깐 누워 휴대폰에 저장된 노래를 랜덤으로 틀었다. 이런저런 노래가 나온 후 시작된 故 김민기 님의 <아름다운 사람>을 들으며 문득 김영대 평론가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사람들이 한국 가요와 아이돌들을 평가절하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시절부터 꿋꿋이 그 노래들과 뮤지션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세상에 널리 알리려 했던 그의 마음과 자세에서 홀로 고고하게 버티는 자의 미덕과 외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어둡고 엄혹했던 시절에 김민기 님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당시의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다면, 김영대 평론가는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그 아름다운 우리 노래들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함으로써 지금의 우리들에게 즐거움과 뿌듯함을 주었다고 난 감히 믿는다. 그래서 난 김영대 평론가의 부고가 작년 김민기 님의 부고만큼이나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아름다운 사람 한 명이 또 우리 곁에서 떠나갔다는 그 부정하고 싶은 상실감 때문에 그렇다.
방송에서는 늘 자기보다 어린 패널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멋쩍게 웃는 바보형 노릇을 하다가도, 아티스트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에는 굳은 표정으로 단호히 반대하던 사람.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분야인지, 특히 우리 가요가 결코 무시당할 장르가 아니며 세계에서 얼마든지 통할 경쟁력이 있는지를 열과 성을 다해 전파하던 그의 모습을 난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만 같다.
음악과 가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음악에 깊이 심취하고 우리 노래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준 당신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부고 소식에 달린 누군가의 댓글처럼 이젠 그곳에서 당신이 좋아했던 신해철 형님과 신나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며 편히 쉬시길 바랄께요. 우리가 <민물장어의 꿈>으로 신해철 형님을 떠나보냈듯, 난 당신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 <아름다운 사람>이란 노래로 당신을 보냅니다.
https://youtu.be/bDVebla4zNw?si=kwhN96PTztguZY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