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던 세상(by 윤상)

이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by radioholic
이제는 무얼 찾아야 채울 수 있을까
마음만으론 찾을 수 없어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내 작은 소망과
밤하늘의 작은 별은
(윤상, '이별 없던 세상' 中)


연말을 꼬박 앓아누우며 한해를 떠나보냈다. 올해만큼 건강하게 보낸 적이 없다며 흐뭇해하던 나의 자만심이 들켰던 것일까. 최근 들어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끙끙대는 사이에 각종 시상식이 축제처럼 열리고 제야의 종이 울렸다. 얼마나 좋았던 해였길래 이토록 심하게 앓으며 떠나보내야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나이 한 살 더 먹기 싫다는 속내가 온몸으로 표현된 것일까. 올해의 마무리를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보내려던 내 계획은, 맥없이 드러누워 죽과 약을 간신히 목에 넘기며 흐지부지 보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새해 첫날 아침에 눈을 뜨니 다행히 몸은 많이 회복이 되어 있었다. 역시 아플 때는 약 먹고 깊이 자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올해는 꼭 잠을 많이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 목표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것이었지만, 이것 말고는 당장 떠오르는 새해 목표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새해 첫날엔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그 징표로 글이라도 하나 써서 올려야 할 것만 같았지만, 올해 1월 1일은 나에겐 그저 어제에 이어진 목요일이자 주 4일 근무를 가능케 해 준 고마운 휴일이란 것 외엔 큰 의미가 없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작년 새해 첫날엔 '보통날'이 많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더랬다. 그 마음이 통해서였는지 작년은 꽤나 담담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낸 것 같다. 큰 기복이 없는, 엄청 좋을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흉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일상들이 이어졌던 고마운 날들이었다. 예전이라면 분노했을 법한 일들에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싫고 미운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피해 가는 것에도 나름 익숙해졌다. 그런 것들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 내 무탈한 보통의 하루를 위해 필요한 자세임을 늦게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럼 올해는 어떤 날들을 보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다가 문득 윤상의 '이별 없던 세상'이란 노래가 떠오른 것은 작년에 내 주변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가슴 아픈 헤어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인정하기 싫지만 우린 결국 올해도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내야 할 테고 가슴 아픈 시간을 감내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실감을 채울 무언가를 빨리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별이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환상에만 존재할 뿐이고, 어쨌든 우리는 헤어짐의 아픔을 버티고 그 이후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현생을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이별 후의 시간을 묵묵히 감내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간 오겠지(몬세라트, 2018)




어른이 되어 갈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음을 젊은 시절의 윤상과 노영심이 다정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해주는 이 노래는, 마흔이 넘은 후에 들었을 때 비로소 가슴 깊숙한 곳을 때리는 울림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우린 이런저런 것들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로 잃어버린 꿈과 순수함을 채울 수 없음을 안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얻으려 발버둥 치지만 그 과정에서 그 이상의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그걸 알면서도 우린 또 어떤 것을 손에 넣기 위한 투쟁을 일상에서 반복한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어차피 시간을 거슬러 이별이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면,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짐의 순간이 왔을 때 잘 보내주는 마음을 갖는 연습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별을 슬퍼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별 그 자체보다는 헤어지기 전에 잘해주지 못한 미련과 아쉬움 때문인 경우가 더 많을 테니까. 먼 곳에 존재하는 커다란 목표를 쫓기보다는, 나와 함께 있어주는 존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인 것 같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올해는 가급적 이별이 없기를. 하지만 결국 어떤 것과 헤어지게 된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잊고 있었던 것들로 그 빈 곳을 메울 수 있기를. 그것이 어린 시절 가졌던 작고 순수한 꿈이든, 나이 든 나를 설레게 해 줄 수 있는 소소한 목표이든 어떤 것도 상관없으니, 그렇게나마 이별 없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곁을 떠난 이들과 소중한 존재들이 부디 그곳에서는 평화롭고 즐겁게 안식의 날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youtu.be/Wumqt1JvH1o?si=8vlw36pY0TE-OG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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