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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Apr 15. 2024

오징어볶음을 해봤다

엄마 손냄새의 정체를 알게된 날

평일 요리 클래스는 수강생이 부족할 경우 열리지 않는다.(당연한 거다) 사실 평일 저녁에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특히 직장인들이라면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린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또 다른 활동을 한다는 게 참 고단한 일인지라 평일 클래스가 열리지 않는다는 공지를 받아도 그리 서운한 마음은 없었다. 학원 강사님은 무척이나 미안해하셨지만. 그렇게 수업이 없는 2주 동안 그전에 배운 것을 까먹을세라 오징어볶음을 복습해 보았다.


겨우 3번의 수업을 들었을 뿐이지만 직접 요리를 해보며 느낀 건 재료 준비가 요리의 70%쯤 된다는 것이었다. 오징어볶음만 해도 그랬다. 마을버스를 타고 망원시장에 가사 온 오징어의 껍질을 벗기고 입을 떼내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양파와 대파 역시 씻고 썰어서 따로 그릇에 담는다. 이 과정까지 마쳤으면 그 후의 시간은 술술 흘러간다. 양파를 볶고, 그 위에 오징어를 넣어 볶고, 양념들을 정량대로 넣고, 대파를(이번 선거판을 뒤흔들었던 그 대파!!) 넣어서 볶으면 그것으로 마무리. 요리하는 건 시간인데 먹는 데는 30분도 안 걸리는 게 허무하다는 와이프의 말은 결코 푸념만이 아니었다.  

과정은 이토록 단순하지만, 그 뒤에는 많은 노력이 숨어있었다


재료손질을 마치며 손을 씻고 무심코 손냄새를 맡다가 멈칫했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았더라...


그러다 생각이 난 건 어린 시절 맡았던 엄마의 손냄새였다. 엄마가 귀를 파줄 때나 엄마 무릎에 누웠을 때 엄마 손에서 나던 습기 머금은 비린내. 아마 그날도 엄마는 부엌에서 오징어 껍질을 벗기셨거나 생선을 만지신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우리 식구들 먹일 음식을 수없이 하면서 손에 배어버린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추억을 환기시키는 가장 강력한 기제가 냄새라고 했던가. 내 손에서 나는 엄마의 그 손냄새를 맡으며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내가 수업을 들으며 익힌 요리를 엄마는 그저 다섯 식구 배를 채우기 위해 생활 속에서 체득하셨겠지. 그걸 우린 얼마나 맛있게 먹었었던가.




그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배운 요리를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의 대부분은 내 혀를 즐겁게 해 주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을 만들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인 것 같다. 그동안 날 키우기 위한 음식을 만드셨던 엄마, 내가 퇴근하고 올 때마다 저녁은 뭘 할지 고민하는 와이프, 내게 요리는 결코 어려운 게 아니고 즐겁기까지 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는 요리학원 강사님, 그리고 매일 점심시간 내 주문을 받고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주시는 식당 직원들한테까지. 아,,, 먹는다는 것의 힘은 이렇게도 강렬한 것인가.


다음 음식은 또 무엇을 해볼까. 40대에 뒤늦게 배우는 요리에 요즘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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