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나이 마흔넷이 되었음에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요리가 없다는 것이 문득 한심해보였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딱히 가부장제에 물든 사람이어서는 아니고 그냥 요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백종원이나 이연복처럼 손재주와 타고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라고.
평일 수업이라 그런지 수강생은 세 명으로 많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의 친구사이인 여자 두 명과 40대 중반의 나. 어색한 구성이었지만 어차피 서로 얘기할 일은 없을테니 마음은 편했다. 오늘의 메뉴인 안동찜닭과 도토리묵사발 레시피 설명을 필기까지 해가며 열심히 듣고 바로 실습에 돌입했지만, 선생님의 예언대로 조리대 앞에 서는 순간 수업내용이 머리에서 증발되어 버리는 마법이 펼쳐졌다. 거참...
난 요리가 레고 조립과 같다고 생각했다. 부품(재료)들을 준비하고, 설명서(레시피)에 따라 차근차근 조립(조리)해가는 과정. 하지만 수업을 듣고 따라하면서 조리 과정 사이사이에 숨겨진 디테일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지가 요리의 요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닭다리와 날개 끝부분은 뼈 있는 부분에서 냄새가 나니 데칠 때 칼집을 내주면 좋고, 멸치육수는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나며, 다진생강 한꼬집으로 누린내를 잡는다는 건 요리를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도란도란 얘기하고 까르르 웃기도 하며 요리를 하는 젊은 여인 둘과, 혼자 말없이 허둥대며 조리법을 따라하는 아저씨,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오가며 지도를 해주시는 선생님 사이에서 약 한시간 반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요리가 완성됐다. 얼마전에도 회사 근처 식당에서 먹었던 찜닭을 내가 만들다니. 국물은 쫄아들고, 당면은 퉁퉁 불어 그리 볼품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이 제법 그럴듯한 찜닭이었다. 준비해간 용기에 서둘러 음식들을 넣고, 행여 식을새라 종종걸음으로 집에 가면서 느낀 성취감은 꽤 기분 좋은 감정이었다.
맛에 엄격한 와이프는 고든 램지와 같은 눈빛으로 찜닭은 괜찮고 묵사발은 비린내가 난다는, 다소 애매하지만 아주 나쁘진 않은 평가를 내렸다. 마치 쇼미더머니에서 '당신은 우리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라는 합격 판정을 받은 것 같은 안도를 느끼며 늦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혹시 까먹을까봐 일요일 점심에 혼자 복습하며 처음보다 나아진 퀄리티에 흐뭇해하고, 간장의 양을 살짝 줄이고 건고추나 고추기름을 첨가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며 셀프 리뷰까지 해봤다.(아... 당면도 덜 익었더랬지;;;)
요즘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왜 이걸 이제서야 시작했지' 라는 후회를 한다. 조금 더 빨리 배웠더라면 삶이 조금 더 즐겁고 윤이 났을텐데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랄까. 하지만 지금 시작한 이런 소소한 배움들이 앞으로의 내 중년 이후의 생활을 공허하지 않게 만들 재료라고 생각하고 계속 해볼 생각이다. 지나간 시간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앞으로도 정말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