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가부장제에 물든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하는 건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손맛 좋은 엄마의 밥을 먹고 자란 아들로서, 그리고 음식을 잘하는 와이프를 만난 남편의 입장에서 그들보다 잘하긴 어려울 거라고 스스로 판단한 탓이 아닌가 싶다. 한창 셰프들이 방송을 장악하던 시절에도 딱히 요리를 하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충동적으로 요리학원을 등록했고, 지금 너무나 신나게 요리를 배우면서 음식을 만들어보고 있다.
식사 후 설거지는 가급적 내가 하려는 편이기도 해서 부엌이란 공간이 낯설지는 않지만, 막상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부엌은 참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공간이었다. 결코 크지 않은 그 공간은 온갖 식재료와 양념, 그릇과 보관용기, 조리기구와 냉장고, 식탁과 조리대, 심지어 음식을 먹은 후 뒤처리를 하는 싱크대 등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게 없는 것 없이 갖춰진 하나의 세계임을 요리를 배우며 알게 되었다. 그 곳에서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부엌이라는 광활한 세계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요리를 배우러 가는 길은 약간의 설렘이 있다. 오늘은 또 내가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때문일까. 그렇게 약 한 시간 반 동안 요리 두어 가지를 만들고 용기에 넣어 집에 가져갈 때의 뿌듯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렇게 만들어간 음식으로 와이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뭔가 하루가 알차게 저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약 40년을 넘게 알지 못했던 영역이 던져주는 재미와 즐거움을 즐기는 중이랄까.
요리 초보인 아저씨가 만드는 요리가 뭐 그리 대단할까. 음식 하나 만드는데 하세월이고, 그렇게 만든 결과물은 맛있다기엔 조금 애매하고, 비주얼은 깔끔하긴 커녕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요리라곤 해본 적 없는 아저씨도 하는 것을 이 글을 보는 당신들이 못할게 뭐 있겠냐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부엌생활의 흔적을 남겨볼 생각이다. 매거진에는 지난 몇 달간 남겨온 약간의 기록과 앞으로 만들어갈 내용들을 담아갈 예정이니 실력자 분들은 격려의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고, 나처럼 초보 이거나 아직 부엌에 발을 들이지 않은 분들은 용기를 얻어가시길. 그리고 매주 좋은 레시피를 전수해 주시는 요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