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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Feb 28. 2024

이태신과 오차장은 어디에 있을까

현실에선 패배자라 일컬어지는 그들에 대한 헌사.

지난 설 연휴에 '서울의 봄' 을 봤다. 무려 1311만명 관람대열에 참 늦게도 합류한 셈이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데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 보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좋은 영화임에도 혈압이 올라 다시 볼 엄두가 안 난다는 사람들의 평가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승자의 역사가 아닌, 실패한 영웅에 대한 진지한 헌사라는 점에서 영화는 참 좋았다. 물론 두 번은 못 보겠지만.


우린 모두 이태신과 같은 이들이 성공하길 바란다. 권선징악 서사에 익숙한 우리에겐 그게 당연한 정서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소위 잘나가고 요직을 꿰차고 있는 이들은 아주 높은 비율로 전두광 같은 사람이다. 아니다. 전두광만큼의 배짱과 실행력도 없이, 그 주변에 찰싹 달라붙어 떡고물이나 떨어지길 바라는 못난 자들이 대다수였다. 사실 전두광처럼 나쁜 짓이라도 엄청난 기세와 실행력으로 밀어붙이는 이들도 흔치 않으니까. 영화를 보며 너무 짜증이 났던 것도 전두광이 승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하나회라는 승리 세력들이 너무 하찮고 비루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내린 운과 타이밍,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상대편이라는 희박한 경우의 수가 모두 맞아떨어짐에 힘입어 권력을 찬탈한 자들이 실상은 겁 많고 비겁하며 옹졸한 한 줌의 벌레들이었다는 것. 그게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 이태신에게서 꽤 오래전 드라마 '미생' 속 오차장이 떠올랐던 건, 사명감과 성실함을 견지하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승리하고 성공하는 게 그토록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비겁한 강자들에겐 단호하고, 부하들에겐 책임감 있고 따뜻하며, 자기 일에 대한 능력도 뛰어난 선배인 그들이 아무리 애쓰고 자리를 지키며 소임을 다해도, 조직 내에서 일보다는 정치질과 협잡을 일삼는데 영혼을 바치는 이들에게 패배하고 밀려나는 게 현실이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현실을 모른다며 조롱당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결국 고립되고 소외되어 버리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이태신과 오차장을 찾는 건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약 16년의 짧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목도해 온 바는 대개 그러했다.


'회사에 이런 사람은 그냥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태신과 오차장 같은 패배자들의 서사에 열광하게 되는 건, 영화나 드라마라는 비현실 속에서나마 그런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 아닐까. 비록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될 능력도 용기도 없고, 주변을 둘러봐도 하나회 떨거지 같은 사람들만 보이는 현실 속에서, 꺾이더라도 굴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희망이라도 갖고 싶으니까. 물론 영화와 드라마가 끝난 후 허탈감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훌륭한 패자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언젠간 그런 사람들이 한 번은 통쾌하게 승리하는 그런 장면을 현실에서 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글까지 끄적이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의 봄' 은 정말 좋은 영화다. 다시 말하지만... 두 번은 못 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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