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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Oct 01. 2024

인생에도 전조가 필요하다면...

조옮김하듯 삶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얼마 전 학원 공연을 준비할 때 원곡과 보컬분의 음정에 차이가 있어, 카포를 끼워 곡의 키를 조정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생의 키도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려 석 달 전에 떠오른 저 사소한 생각을 참 늦게도 글로 옮겨 쓰게 됐다.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중간에 곡의 키(key)를 바꿔야 할 때가 있다. 키를 바꿈으로써 노래의 감정을 한층 고조시키거나 곡의 분위기를 다르게 전환시킬 때가 그렇다. 이적이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 를 듣다보면 2번의 전조를 거쳐서 감정을 계속 고조시키며 듣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지 않던가. 그저 키를 옮겼을 뿐인데 하나의 곡이 마치 다른 곡으로 바뀐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전조' 라고 부르는 이런 기법은 곡에 변주를 주면서 듣는 재미를 배가 시키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과정은 아니다. 노래방에서는 리모컨에 있는 #이나 b 버튼을 눌러 음정을 조정하면 되지만, 악기의 경우엔 조옮김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곡의 조성을 바꾸는 과정을 음악 이론과 기타의 원리에 따라 하는 건 웬만한 실용음악 전공생이나 오랜 내공이 있는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엄두가 잘 나지 않는 복잡한 일이다. 이래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이다.


네 뭐.. 대략 이렇답니다...(홍표뮤직 블로그에서 일부 발췌)


한 곡의 노래 안에서 키를 바꾸는 데에도 이렇듯 생각할게 많다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그게 소위 '중년' 으로 통칭되는 내 나이쯤인 것 같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때, 100세 시대인데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사회적 분위기에 직면할 때, 지금까지 해온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의 궤적을 옮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한 때 20~30대 공시생들이 주를 이루던 노량진 고시촌을 50~60대 노년층이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며,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저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퇴직 후의 녹록지 않은 생계의 벽을 마주했을 때의 그 절망감은 얼마나 큰 것일까. 인생 이모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은 없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학원을 등록해서 자격증을 따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게 한국 중장년층의 현실이다. 회사동료들이나 친구들과 만나면 '플랜B'는 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는 것도 내 또래들이 겪는 불안의 증거다.


기타의 세계에는 참 다행히도 조옮김에 대한 고민을 한 번에 타개해 주는 카포(capo)라는 구원자가 있다. 전조를 하면 바뀐 키에 맞는 코드를 다시 생각해서 잡아야 하는 고행을, 카포라는 집게를 특정 프렛에 똭 끼우면 원래 코드 모양으로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도구인 셈이다. (물론 카포는 곡 중간에 전조가 일어난 경우에 사용하기가 매우 까다롭지만,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는 글라이더 카포도 있다.) 우리의 삶이 음악과 비슷하다면, 인생의 방향을 조금 더 수월하게 바꿔줄 카포 같은 존재도 있지 않을까. 그게 주변의 좋은 사람이든, 지금은 별게 아닌 것 같아도 우리가 꾸준히 하고 있는 어떤 것이든 말이다. 


내 삶에도 카포가 있을까


내 인생의 키를 쉽게 바꿔줄 카포를 찾을 수 없다면 결국 부단히 노력해서 카포 없는 전조를 할 수밖에 없겠지. 앞으로의 인생에 조옮김이 필요하다면 난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이제 정말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한 요즘이다. 물론 그래도 난 계속 기타를 치겠지만ㅎ


https://youtu.be/Dic27EnDDls?si=Z8kwD0w4Lae91U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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