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울 어머니의 확고한 철학 덕분에 난 어린 시절부터 또래 친구들이 먹지 않는 음식들을 반찬으로 많이 먹었다. 학교 친구들의 도시락엔 늘 프랑크소시지와 돈가스가 들어 있었지만, 내 도시락엔 김치나 오이지, 우엉볶음이나 파와 당근이 들어간 계란말이 등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소시지 반찬이 부럽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야채가 들어간 반찬들이 맛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도시락을 나눠먹던 친구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ㅎ
그렇게 음식을 가리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나물 반찬에는 선뜻 젓가락이 가질 않았다. 시금치나 콩나물을 뺀 나머지 나물 반찬들은 냄새도 뭔가 쿰쿰하고 식감도 거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아주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물들을 보며 어머니는 '나물 좀 먹지!' 라고 나무라셨지만, 다른 반찬을 안 먹었을 때와는 달리 그 나무람 속에는 화가 섞여있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내 나이에는 나물을 먹기 싫어하는 게 당연한 거라는 그런 이해가 어른들의 마음속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문득 학원에서 취나물밥을 배우고 만들고 있는 스스로가 신기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나물을 좋아했다고, 무려 취나물밥이란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고기라고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취나물과 버섯, 그리고 양념만으로 만들어진 절밥 같은 음식을 내가 좋아한 적이 있었나? 그런데 말이지... 나물을 간장과 참기름에 볶으면서 나도 모르게 향에 취하고 군침을 삼키고 있지 않던가.
요리 과정은 심플하다 못해 간소하기 그지없다. 취나물을 물에 오래 불린 뒤에 채를 썬 표고버섯과 함께 간장과 참기름에 볶고(이때 풍겨 나오는 향이란 정말...ㅠ), 불린 쌀을 냄비에 넣은 뒤, 나물 불린 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약 15분간 약한 불로 쪄내면 그걸로 끝이다. 참 쉽죠?
집밥네컷 : 재료만큼이나 소박하고 담백한 조리법
취나물밥의 맛의 요체는 기다림이다. 나물을 불리는 시간, 쌀을 불리는 시간, 그 불린 재료들을 한데 넣은 뒤 다시 밥을 짓는 시간들을 묵묵히 감내하는 것. 재료를 썰고 볶고 냄비에 넣는 조리과정은 겨우 10분 남짓이지만, 나머지의 시간을 기다림으로 채우는 과정을 온전히 거쳤을 때 풍겨 나오는 취나물의 향이 우리를 홀린다. 냄비뚜껑 틈을 통해 새어 나오는 취나물과 버섯의 향기에 나도 모르게 취한 걸 보면, 사람을 취하게 해서 취나물이라고 한 것일까. 간장과 고춧가루, 참기름과 후추로 만든 아주 간단한 양념장을 살짝 더해 비벼먹으니 이만한 산해진미가 없다. 물론 쌀이 살짝 설익어서 꼭꼭 씹고 뱃속에서 더 익혀야 하기는 했지만...
나물밥이 좋아진다는 것은 나도 어느덧 내 편식을 이해하던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너도 나이 먹어봐라...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될테니' 라는 마음으로 엄마는 내가 남긴 나물들을 혼자 드셨겠지. 그리고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나는, 이렇게 취나물밥을 배워서 한번 해보고는 이렇게 나물 예찬론을 쓰고 있다. 이게 얼마나 향기롭고 맛이 좋은지 아느냐며. 여느 고기반찬 부럽지 않다면서 말이다. 시간과 세월의 흐름을 음식을 통해 이렇게 느끼게 된다.
어른의 맛. 취나물밥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네 글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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